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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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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선교사 빌립 집사
/
Philip
                                       [행 8:5-7]   


 
1. 인적 사항과 주요 생애

'빌립'이라는 이름은 '말을 사랑 하는자' 라는 뜻입니다.
빌립은 헬라파 유대인으로 각처에 흩어져 살다 돌아온
유대인들 중 한 사람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유대교 사회로부터 소외 당한 사람들로
예루살렘교회의 빈민구제에 대부분 의존하고 살고 있었으나
히브리파 과부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은 관계로 말썽이 생기자
사도들은 이 구제사역을 모범집사 일곱을 택하여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빌립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그의
온전한 믿음과 신앙은 주님의 능력을 덧입게 되어 스데반(순교자)집사와
더불어 주님 사역을 이루는(전도자) 일꾼이 되었습니다. (행 21:8)

스데반의 순교 후 핍박이 심해지자 사도들 외에는 다 교회를 떠나
각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빌립은 이 때,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한
'최초의 평신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그는 주의 사자의 인도를 받아
가사로 내려가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고 있는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여 줌으로 북아프리카 선교의 문을 열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세 번째 선교지로 가사에서 동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지중해 연안 4.8Km 내륙지방인 '아소도'로 올라가
그 곳과 주변 여러 해안지방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고
마지막으로 '가이사랴'로 옮겨가 그 곳에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이사랴'는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사역의 종착지이자
고넬료의 개심에 의하여 믿음의 문이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열려진 장소에서 네 딸의 자녀와 더불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약 25년간 복음전도자의 사역을 수행하고 있을 당시 사도바울이
세 번째 전도여행에서 가이사랴를 방문했을 때,(A.D.58 년경)
빌립집사는 사도바울과 누가 등 주요 사역자들을 영접하여
자신의 집에서 오래 동안 머물게 하였으며
예루살렘에 대한 많은 소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빌립과 사도바울의 인연은 참으로 희한해
처음에는 원수의 관계에서 헤어졌지만,
25년이 지난 후에는 주의 일에 동역자가 되어
함께 돕고 지내게 되는 인연으로 맺어지게 됩니다.

그 후 전도자 빌립은 '리디아''트랄레스' 감독으로 옮겨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였으며
재직하던 중 그 곳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2. 신앙의 특징

1)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평신도였습니다 (행 6:5)

믿음에는 믿는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 그 정도에 해당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경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마가복음 16:17)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내려가 복음을 전했을 때에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다고 했습니다 (행 8:7).

귀신의 특징은 붙었다가 떨어졌다 합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자기에게 귀신이 붙어있는지 아닌지 모릅니다.
다만 귀신은 더럽기 때문에 붙어있는 사람에게 생각도, 언행도 더럽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이중생활 하는 경우들 대부분은 더러운 귀신들의
사주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귀신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의 ‘심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립 집사의 믿음이 큰 이유는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으로
귀신들이 놀라 떨어져 나간 데 있습니다.
또한, 믿음은 대상과 함께 있게 만드는 원천이지만
한편, 성령님의 능력을 방출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성령의 역사로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내 안에 성령님의 내주 하심이
가득 찬 것을 의미합니다. 외부로 나오는 능력이 병 고침이요,
내부에서 일하시는 사역이 인도하심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의 사역에 이어 가사로 내려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고 있는 내시에게 나아가도록
성령의 지시를 받습니다. (행 8:29)
그리고 이사야를 읽고 있는 그에게 '어린양'
"예수님"이 심을 알려주었습니다.

여기에서 빌립의 전도에는 특징이 있음을 봅니다.
그 것은 오직 주님만을 증거하였다는데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서도 오직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8:5)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도 오직 주님만 증거하였습니다. (8:35)

빌립집사의 신앙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믿음이 강하면 주님을 증거하는 반면
믿음이 약하면 전도할 때 교회자랑, 축복, 응답, 병고침…등으로
외부 여건을 가지고 전도하려 드는 경향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참 믿음은 내 안이 예수님으로 가득 찬 상태를 말합니다.
이같은 믿음은 주님을 나의 신앙생활에 수단으로 여길 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오직 나의 주인으로,
나의 삶의 주관자로 모실 때에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내면에 가득찬 주님의 역사하심이 나옵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대신 내 생각이 가득차 있으면 내 것에 주님이 실려 나오지만,
주님이 가득 차 있으면 주님에 대한 밀씀만이 나오게 됩니다.

신앙의 부수적인 것들이 나올때는 내 안에 자신으로 가득 차 있을 때입니다.
빌립은 자신의 마음을 주님으로 가득 채운 신앙인이었습니다.


2) 사역을 성공보다는 영혼구원에 초점을 둔 신앙이었습니다.

빌립은 혼자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내려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역을 개척한 것입니다. 주님의 기적과 이사가 나타나자
그의 사역은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그 성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좇았습니다.
그는 이제 그 곳에서 안주하여 부흥된 사역을
편안히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그에게 70km나 떨어진 서 남쪽,
애굽의 길목인 '가사' 로 가서 전도하라 하셨습니다.
그 것도 그 곳엔 오직 이방인 내시 한 사람을 상대로 한 사역이었습니다.

수 많은 추종자를 둔 능력 있는 주의 종의 입장에서는
그 사역보다 사마리아에 남아 더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시 한 사람의 영혼 구원만 보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이디오피아 전체를 구원하실 계획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사역의 성공은 나를 중심으로 일 할 때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사역의 성취는 주님을 중심으로 일할 때 중요한 것임을
빌립 전도자는 순종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는 내시의 전도가 끝나자 다시 사마리아로 돌아 온 것이 아니라
가사 지역에서 동 북쪽으로 40km 더 들어간 지중해 연안 지역인
'아소도'로 가서 그 곳 여러 성을 (룻다와 욥바)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복음의 열매는 그곳에서도 자라나 후에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를 방문하였을 때 그 곳에 이미
기독교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나있습니다.

그 후 그는 '가이사랴' 라는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요충지이며
로마 총독이 거주하고 있는 그 곳에 머무르며
많은 주의 일꾼들을 대접하는 사역을 행하였습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사역의 대가를 받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의 상급과, 이 땅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으로 인한 축복입니다.
교회의 대형화, 성도의 다수화로 인한 물질의 축복은
이 땅에서의 축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것을 하늘나라의 상급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길 시에,
영혼구원의 초점을 둔 사역은 이 땅의 축복을 누리려는 마음에 의해서
변질되어 소중한 영생의 축복을 잃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빌립 전도자는 우리에게 물질, 명예, 안일을 기대한 사역이 아니라
오직 영혼구원을 위한 깨끗한 마음의 사역을 한
진정한 신앙인 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인내와 겸손을 겸비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의 강한 기적과 이사의 역사가 있은 이후로
빌립에게는 이렇다 할 역사하심이 나타나지 않은 채
가이사랴에 머물며 20년 이상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주의 종은 나타나는 사역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숨은 사역은 못 견디게 힘든 법입니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2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또한 그는 가이사랴에 있는 백부장 고넬료가 회심하는데
“왜 주님께서는 가까이 있는 자신을 통하여 역사를 일으키게 하시지 않고
먼 거리에 있는 (욥바) 베드로를 청하여 회심케 하셨는지?"
이에 대하여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사역으로 말하면 빌립이 항상 개척해 놓은 곳에
사도 베드로가 뒤따라 옴을 보았을 때 그도
사도와 버금가는 영적 사역의 기득권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흔히 사역에는 비교가 따릅니다. 시기가 따르며,
분열이 생깁니다.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서는 한번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 모두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즉, 기다리게 하시면 기다리고, 남을 쓰시면 도와주고,
다시 명령하시면 순종하고 하는 진정
 '주의 종' 으로서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역은 시험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성령님을 동반합니다.
결국, 사역은 성령님의 주관 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20년 이상 숨은 사역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오직 그의 주의종 으로서의 겸손 이었습니다.
그의 '가이사랴' 에서의 기다림의 사역의 마지막으로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바울과
그의 일행을 영접하는 사역이 주어지게 됩니다.

빌립의 접대로 인하여 가장 유익을 얻은 사람은 누가였습니다.
그는 빌립으로부터 20년 동안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일과
사도들의 행적에 대하여 자세히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은 나중에 사도행전을 집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25년 전에 원수로 헤어졌던 빌립과 바울.
그러나 지금 동역자로 재회의 순간이 있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가이사랴에 머물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

또한, 다시 헤어져서 마지막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각자의 갈 곳으로 깨달아 인도하시는 성령님!

그 때 빌립의 딸들이 바울을 향해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와 함께 예언 하기를
'예루살렘에 가면 핍박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지 말라' (21:12)
권면하였습니다.  이 때 사도바울이 대답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v13)
하고 믿음의 담대함을 보였습니다.

믿음은, 의지하고 순종하며 주님을 위해 자신을 드림으로
완성되는 것을 빌립은 보았습니다.

바울은 순교를 향한 길을 택했습니다.
빌립 또한 자신의 생명을 드릴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것은 바로 '리디아의 트랄레스 지역'의 감독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은 그 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드리게 됩니다.

유명한 일을 하였음에도, 유명한 이름으로 나타나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진정한 복음 전도자인 집사 '빌립’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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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7.28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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