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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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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그리스도인
(겔 36:26-27)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자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빚으신 다음에 그 속에 자신의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인간의 몸에 살아서 움직이는 혼이 생겨나게 하셨습니다. (창 2:7)
그러므로 인간의 몸에 제일먼저 들어 온 것이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영인 것입니다.

1. 인간은 영이 주도하는 삶을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짓기전에 삼위께서 서로 상의하실 때에 인간 창조목적을 다스림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하자 하시고."(창 1:26)
그러면 무엇때문에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을까요?
그 것이 시편 8편 6-9절에 답이 주어져 있습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v 6)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v 9)    

즉, 주의 이름이 세상 아름다운 만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성호로 인간에게
계시되어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의 자각과 말씀의 지혜로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면
그 결과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게되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여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혼의 역할은 '땅을 정복하라'하셨은즉 이는 땅을 자신의 것으로 취급하며
뺏고 소유하라는 뜻이 아니라 다스림을 위하여 땅에 속한 모든 것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모두가 유용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식을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의 세계는 영적으로 이루워진 세계의 일부이고
 지식의 발전은 영에 속해 있을 때, 하나님이 허락히신 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형성되어있습니다. (고전 2:9-10)

또한 인간의 몸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하셨은즉 이는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녀를 얻기위하여 가정과 부부의 행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말 2:15)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천국을 예수님이 다스리는 것과 같이 이 땅도 믿음의 자녀인
우리들로 다스리게 하심으로 모든 만물이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고
땅에 예비하신 모든 보고들을 개발하고 사용하여 만물들에 유익을 주고
또한 보람과 기쁨을 누리며 부부가 행복하게 살도록 자녀를 생산하는 축복을
누리는 삶이 영이 주도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같은 본연의 삶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1) 죄는 하나님과 영과 의 관계를 차단시키는 세력입니다.

이 우주에는 두개의 큰 영의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의지이시며 또 하나는 사탄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의지는 창조의 능력이시며 선을 위한 영생의 의지이신데 반해,
시탄의 의지는 피조물의 의지이며, 타락을 위한 악의 의지로
혼을 근거로 기숙하는 의지입니다.

즉, 내 뜻대로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며 이기적인 마음으로
 만물을 착취 이용함으로 하나님의 창조물을 괴롭히며 육신을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떠나 짐승같은 본능의 삶을 사는 존재로 파멸시키는 의지입니다.

아담이 사탄의 의지를 따르자 인간의 영은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계시적 지혜와 능력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기능이 마비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커진 혼 속에 묻혀 혼합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히 4:12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하였습니다. 즉, 광석을 녹여 금과 은과 찌꺼기로 분류하듯
말씀이 우리 속에 뭉쳐있는 영, 혼, 육의 죄의 덩어리를 쪼개어 분리시키고
깨끗게하여 다시 재 구실을 하도록 회복시키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인간의 영은 성령으로 인하여 다시 회복되어질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레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영을 주시는 길은 말씀으로서 영, 혼, 육의 기능을 구분시키시고 이어
성령으로 역할을 회복시키시는 순서로 진행시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속사람을
먼저 변화시키시고 다음에 겉사람을 변화시키시는 것을 순서로 행하십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이해와 인식으로 속사람이 변화된다고 거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이해보다 은혜로 먼저오는 것이  순서입니다.

즉, 유대관원 니고데모는 율법도 규례도 다 지켜 행한 모법적인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성령을 받지못한 이성적인(혼적)신앙인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속이 변화된 후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그는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장례를 치룬 헌신으로보아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 수있습니다.  

  2. 영이 살아나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요? ㅡ세가지의 달라진 삶이 나타나게 됩니다.
 
1)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게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인생을 죽어라하고 뛰면서 사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 것은 아버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실패하거나 병들어 쓰러지면 고아같은 외로움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육과 혼의 노력이 끝날을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시작되게 됩니다.

첫번째 인도하심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이어서 각자의 형편에 알맞게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즉 이름의 속성에 따라 인도, 예비, 치료, 승리,
평강, 의, 함께하심... 등으로 스스로 계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성령의 인도로 찾은 사람은 그 다음부터는 큰 위로 가운데 살게됩니다.
그리고 어버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가지 이름의 체험이 점점 7가지 체험으로
늘어가고 동시에 성화의 길을 찾아가게 됩니다. 성숙하게 자라나고자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진정으로 께달을 때, 스스로 속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입니다.

2) 예수님의 영적신부로서 살게됩니다.

신부가 일생에서 가장 가슴 설레이는 날은 결혼식날 입니다.
처녀로서의 순결을 평생 지켰던 삶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 것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만 이제 영적인 순결성은
주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혼과 육은  죄로 타락되었기 때문에 욕망따라 살았지만
새로 태어난 영은 거룩하기 때문에 죄된 일을 하지 않기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부모로서의 사랑이었다면 예수님의 사랑은 남편으로서의
사랑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에로스와 필레오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을 모릅니다.
그 것은 육이 영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기르쳐주시고자 했던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이 때 베드로는 필레오 사랑으로 대답했지만 후에 아가페 사랑을 깨닫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음으로 아가페의 사랑을 자신도 예수님께 보여드렸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되었으니.'(계 19:7)

우리의 소망중의 소망은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육으로 죽고 영으로 다시 삽니다. 영이 성숙해지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신부로서 살려는 사모함을 지니게 됩니다.  

3) 성령님의 동역자가 되어 살게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입고 살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악한 원수 마귀의 유혹과 공격을 받고 이 세상에서 살아야합니다.
또한 여전히 육신 속에 남아있는 욕망은 완전히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방법은 오직 한가지 죄를 이기시고 사탄마귀를 이기시고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의 육과 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깨어난 영에 거하십니다.

  즉, 영생을 주신 곳도 영이요, 계시를 주시는 곳도 영이요, 은사와 능력을 주시는 곳도 영이요,
교제하며 머무시는 곳도 영안입니다. 혼과 육은 세상에 관한 삶에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영은 천국에 관한 삶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줍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일은 한가지 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영이 살아나면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을 주관자로 모시고 살 때, 인도와 역사가 일어나게됩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상급받는 것은 이 세상에서 성령님과 동업한 사역뿐입니다.
이 세분의 역사하심이 내 영안에 계실 때우리는 온전한 사랑을 이루게 되고
이 온전한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내쫓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가 있습니다.

3. 영의 사람으로 사는 데는 두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1) 예수님과 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 6:17)

그리고 이 연합은 오직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함으로서만 이루워질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5)

우리가 주님의 죽음과 연합되면 우리안에 타고 난 것은 다 죽은 것이 됩니다.
그리고 부활에 연합이 되면 아담에게 허락하신 모든 순수한 본능과 신령한 마음으로 살게됩니다.
적게 죽으면 적게죽을 수록, 많이 죽으면 많이 죽을 수록, 다 죽으면 다 죽을 수록 부활에서 주어지는
영력도 비례하게됩니다. 얼마나 모시고 사느냐가 속한 영역의 삶을 살게 만들어줍니다.

2) 항상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우리는 신령한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신부가 될 수 있듯이 성령닙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순종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의 끝은 항상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는 곳입니다.
천국의 보상은 이 땅에서의 믿음의 고난의 흔적임을 생각할 때, 축복만을 기대하기 보다
십자가에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따라가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이루는 영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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