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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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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삶
(눅14: 26- 27)



신약에서 ‘제자’ 라는 단어는 269회 나오고
그리스도인 이란 말은 3회이며 신자란 단어는 2회만 나옵니다.
이와 같은 회수는 성경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교회의 임무는 그리스도인이나 신자를 만드는 것보다도
제자를 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성도 또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신앙자세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주님을 좇은 무리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권능과 이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떡을 먹이시고 하시자
따르는 무리들은 영혼구원과 천국에 관한 관심보다는 당면한 현실인 로마제국의
지배에서 해방 시켜줄 정치적 지도자로 추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구원의 대상’ ‘영혼’이며 구원의 방법은 ‘복음’이었지
무력이나 반란을 일으켜 육신을 해방 시키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을 영혼보다는 육신에 관계하여, 그리고 천국보다는
현실의 처지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삼는 신앙생활을 할 경우에는 구원보다는
기복신앙 쪽으로 본질이 바뀌어지는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제자로써의 삶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됨으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는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로 하여금 제자를 삼는 삶을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1.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신 제자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1)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 26]

세상의 어느 대상도 예수님 보다는 덜 사랑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 친족을 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롬 5:5]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게 되면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심으로 예수님도 더욱 아가페적 사랑으로 섬기고 사람들에게도
더욱 폭 넓고 깊은 신앙 안에서 사랑하게 됨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생과 영혼의 중심이십니다. 나 중심에서는 나의 역량만 발휘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나의 인생에 중심으로 모시게 되면 주님의 역량이 발휘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가장 큰 은사인 사랑으로 부어주십니다.

2)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그리스도인에게는 누구나 자신들에게 주어진 십자가와
짊어질 십자가가 있습니다. 즉, ‘생활의 십자가’‘사명의 십자가’ 입니다.

[예] 신체적인 결함, 병든 부모, 배우자 및 자녀의 수발,
대가족 양육부담, 시댁 시집살이… 등

이 같은 현상들은 나를 연단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짊어지게 하신
생활의 십자가 입니다. 이를 통하여 인내와 겸손을 배우게 되고
죄 된 욕망의 길로 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말씀은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감수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희생과 고통을 겪는 것을 말합니다. 그 것은 전도, 양육, 교육, 섬김, 봉사,
구제, 선교, 등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할 때 생기는 어려움 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환경에 주어진 십자가도 피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정입니다.
그러나 짊어질 십자가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주님이 내 처형 받을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대신 짊어지라고 허락하신 작은 십자가일 망정,
남을 위하여 나도 져야 함을 깨달음으로 자진하여 질 수 있게 됩니다.


3) 자신의 소유를 아낌없이 내려 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 33]

예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교회에
헌금하거나 구제로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유를 올바르게 사용 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심은 소유의 기쁨을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사용의 기쁨을 위하여 맡기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소유냐, 사용이냐의 물질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제자도의 진실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 부자청년)


이를 위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물질의 궁핍함을 한번은 겪게 하십니다.
온전히 주님을 의지 하는 법을 배우게 하신 후에 넉넉함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야 물질에 얽매이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로서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1)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제자의 임무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 34-35]

[예] 경건한 '사무엘 러더포드'라는 목사는 토요일 저녁이면
가족과 성경공부를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저녁, 누군가 문을 두드려서 열어 보았더니
낯선 사람이 하루 쉬어 가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들어와 성경공부를 하는 가운데
가장 쉬운 질문을 그에게 하였습니다.

“계명은 모두 몇 가지 있지요?” “네. 열 하나입니다.”
그러자 그는 그 손님이 당황하지 않도록 “10 가지겠지요.”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손님이 말하기를 “거기에 하나 더, 예수님께서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 하신 것이 추가되어 11계명입니다.” 하였습니다.

이튿날 주일 아침, 러더포드 목사는 울타리 뒤에서 나오는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참으로 진실한 기도에 감동되어 한참
기다리다 기도가 끝나자“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 저는 아일랜드 대주교 ‘어셔’ 입니다. 당신의 경건이 널리 퍼져
직접 확인해 보려고 이 방법을 썼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계명적 순종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의지적 행위보다는 계명으로 지켜 행하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명령으로서의
근거는 자신의 십자가의 사랑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사랑을 감정으로 행하려고 할 때는 차등이 작용하게 됩니다.
계명으로 행하려 할 때에 평등함으로 모두에게 베풀 수 있게 됩니다.

2)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이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8]
열매에는 두 가지의 영역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내적인 영역의 열매”
‘회개의 열매’와(마 3:8) ‘성령의 열매’(갈 5:22)가 있고,
또 한 가지는 “외적인 영역의 열매”‘복음의 열매’가 있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4:35]


내적인 열매는 '성숙에 관한 문제'이고, 외적인 열매는 '상급'에 관한 문제'입니다.

자녀가 어렸을 땐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지만 성인이 되어 철이 들면
부모의 뜻대로 하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 안에서 성숙하게 되면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려고 하게 됩니다. 그 것이 바로 전도의 삶입니다.

미성숙할 땐 말로 하려 하지만 성숙하면 행위로 합니다.
미성숙은 '양' 위주로 목표을 채우려하지만, 성숙은 '내용'을 위주로 합니다.

미성숙은 '인도'하면 끝이지만, 성숙은 '바로 설 때까지’
보살핍니다. 전도의 동기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3) 날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이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

대개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 나에게 위로를 줄 약속의 말씀을 보기 위함이요,
그 다음에는 용기를 얻을 능력의 말씀을 찾기 위함일 때가 많습니다.

이 때는 대개 나의 처지가 어려운 환경에 지배를 받고 있을 때의 신앙의 경우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양식과 묵상으로 매일 꾸준히 먹고 그 말씀을 간직하고 사는 삶은
신앙이 환경을 다스리는 상태가 되어 형편을 넘어선 평안함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생명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이기 때문에 매일 양식을 먹어야 유지됩니다.
거듭난 생명은 매일 말씀을 양식으로 먹고 묵상으로 말씀을 간직하며 살게 만듭니다.

순종은 말씀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너도 가서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의 마지막 사명은 결국 제자 삼는 삶입니다.
이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지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 28:19)

3. 제자로서의 삶은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의 삶을 약속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로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12:26]

1) 제자의 특권은 주님께서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떨어져 사는 세상이지만 주님과 다시 한 번
이 세상에서 사는 기회는 반드시 오게 됩니다.
그 기간은 "천년왕국"입니다.

그 때는 주님과 더불어 왕 노릇 한다고 하였습니다.
참 제자가 되는 기회는 바로 이 시간 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에 삶은 그 시대의 삶에 준비기간입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의 삶으로 마감되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기다리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제자가 되어 다시 이 땅에 내려와 주님의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기쁨을 기대하여 보십시오.

지나간 세월은 아깝지 않고, 남은 세월은 귀중하며, 어서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완전한 행복의 삶을 사는 기쁨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2) 제자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저를 귀중히 여기시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실 존재가 못됩니다. 하나님을 배반했고
죄를 더 사랑하며, 천국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용서는 받아도 의인으로서의 인정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 때문에 우리를 귀중히 여기신다 하셨습니다.
즉, 주님께 대하시는 태도로 우리에게도 대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 것은 아브라함, 다윗, 다니엘에게 베푸신 은총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우리에게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천년왕국 후에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참 믿음의 생활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 것이 바로 '제자로서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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