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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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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칭의

[롬 3:24]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가까운 분은 하나닙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선 만 알때,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를 먹음으로 선의 세계에서
악의 세계로 빠져버리게 되었습니다.

악의 세계는 선의 세계와는 반대로 불행이 가득한 삶입니다.
이로서 인간은 이중적인 인격의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죄악을 제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 것은
악의 속성이 온 몸과 마음 속에 혼합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악을 경험하는 것은 선을 더욱 올바로 알수 있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천사와 다른 것은 선악을 모두 안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죽음으로 제한을 두신 것은
악의 경험을 제한적으로 허락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타락은 나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타락을 청산하면
더욱 타락과는 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이 진정 죄를 싫어하고
타락한 생활을 벗어나 더욱 선한 삶을 살려는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올바른 구원의 첫 시작이 '이신칭의' 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1. 이신칭의란 무엇인가?


'이신칭의'란 믿음으로 인해 의롭게 여겨짐을 받았다는 의미로
의인의 신분을 얻음으로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죄성을 지닌 인간은 죄를 떠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상태에서 살게되었습니다.
즉 죄를 짓지않아도 죄의 근원에서는 죄된 생각과 마음을 계속 갖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안지어도 죄의 마음은 심판으로 다스리십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에 의하여 아무리
하나님께 다시 다가가고 싶어도 결국 마음뿐이지
다가가면 심판받아 죽게 되어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되어진 의로 보시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기때문에 인간 모두를 책임질 수 있으시고,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모든 죄를 다 떠맡으실 수 있으시며
율법을 다 지키신 분이시기 때문에 충분한 의인의 자격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주님을 우리 죄대신 심판받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시키셔서 대속의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보실 때,
죄인이 아니라 주님의 죄 없으신 상태로 율법을 다 지킨
의인으로 바라보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죄를 사함받은 것도 용서함 받은 것도 아닌 죄 자체가 없어진
선 만을 지닌 옛 아담같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

칭의란 죄사함과 용서함과는 다른 말입니다.
죄를 사하여 주었다는 것은 죄지은 것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벌주는 것은 용서해준다는 것을 의미압니다.
즉, 벌 받아야 할 근거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칭의는 벌을 받을 모든 것을 없앨뿐아니라 벌을 줄 수 있는
근거를 아예 없애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분명히 죄를 지은 죄인인데
의인으로 쥐급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칭의의 상태란
어떤 상태인지를 세가지 예를들어 설명하고 았습니다.


1] 법정에서 무죄로 판결을 받은 상태의 경우입니다.

헬라어로 '의로 여기다' 란 단어는 '디아키운'입니다.
'의인으로 취급하고 인정한다'란 의미입니다.

인간이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을시 무죄로 판명이되면 자유인이 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법정에 재판을 받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가 없는 의인으로의 판결을 내려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2] 제사에서 제물을 드림으로 먼저 상태가 없어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부자간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하나님 앞에 법죄함으로
원수간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사를 통해 제물을 대신 죄의 댓가로 심판하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물로서의 제물은 그가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자격까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제물이 되시어 드려짐으로
우리는 죄가 없는 주님의 아들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이 완전히 소멸됬음으로 완전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힐라스테리온]


3] 노예제도 에서의 완전 해방을 받은 상태를 말합니다.

속량이란 단어 '아플루트르시스'란 헬라어는 댓가를 치룸으로
완전히 그 상태에서 지불되어 자유롭게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죄값을 완전히 치루었으므로 모든 죄와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난 자유인이 된 우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로 부터는는 심판을 대신 받으셨으며,
스스로 화해의 제물이 되심으로 아들의 자리에 우리를 앉게 하여주셨으며,
죄의 지배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마귀의 권세에 대하여
 죄의 삯은 사망으로 모두 지불하여 주심으로 완전히 죄의 노예에서
벗어난 자유인으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칭의는 하나님 편에서의 선언입니다.
우리의 상태가 어떻든 하나님의 선포가 우리에게는 제일 중요합니다.
그 것을 알고 칭의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인 것입니다.


2. 우리는 의롭다 여김을 받기 위하여 어떤 믿음을 가져야할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두가지 방법으로 창조하였는데 아답은
근원이 흙임으로 흙의 속성을 지닌 인간으로, 주님은 근원이 생명인
생령의 여인으로부터 성령님에 의해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즉, 육신의 탄생과 영의 탄생으로의 구분이 된 탄생 구조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도 두 구조의 탄생과정을 거칠 수 있으며
육적인 틴생에서 영적인 탄생으로 변화될 수 있게 하여주신 것입니다.


1] 이 과정은 대표와 연합의 원리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지게됩니다.

아담은 전 인류의 조상이자 인간의 대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언약을 우리와 맺으신 것이 아니라
대표인 아담과 맺으셨습니다.

허나 아담이 그 언약을 지키지 않자 죽음과 저주와 영벌이 주어지게 됐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어도 우리의 대표가 죄를 지음으로
그의 후손은 자연히 똑같은 저주아레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 것이 육의 탄생의 비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성도를 구원하시고자
새로운 탄생의 인간을 대표로 삼으셨습니다.
즉 생령의 인간의 몸에서 성령의 역사로 탄생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흙으로 돌아가야할 죽음의 속성이 없으시고
 육신의 죄성으로 잉태하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잉태하셨기 때문에
육의 죄된 욕망의 근원이 몸에 없으신 분이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육의 탄생이 의미가 없어진 것은
곧 죽게 되는 삶이기 때문이며 영의 탄생이 중요한 것은
이 탄생으로 영원히 살수 있기 때문닙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두 대표를 인간의 조상을 삼으시고
육의 연합으로는 아담의 후손으로, 영의 연합으로는
하나님의 후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새 생명의 구원의 길을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여 놓으신 것입니다.


2] 아담과의 연합은 우리에게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세상사람들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려고
이 세상에서 행할 수 있는 것과, 구할수 있는 것을 총동원 해보지만
모두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물질 세계에서는 영의 세계의것 영생을
하나님외에는 허락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오직 자범죄는 줄이거나 없앨 수 있어도
원죄는 자신의 생명 이전의 생명에서 유전된 것이기 때문에
마치 인간이 성도, 체질도, 부모와 달리 할 수 없음같이
죄의 유전도 아담과 달리 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즉, 자의건 타의건 아담과의 연합된 육의 탄생은
아담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죄 속에서 살다 죄 속에서 죽는 삶입니다.


3] 예수님과의 연합은 우리로 죄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되어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게합니다.


우리가 육으로 아담과 연합되어 있듯이 또한 영으로는
예수님과 연합될 수 있습니다.
이 연합의 과정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주님 안에서
거듭 태어나는 것이며 이 것은 오직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된 성도들에게만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십자가 위에서
육의 아담과의 연합은 죽어 끊어진 것이며,
부활에 의해 주닙 안에서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거듭남의 증거가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즉, 죄에서 멀어진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있는 삶을 살게 만들고 이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삶에서
하늘의 것을 좇아 사는 삶으로 바꾸어지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연합과 '이신칭의'와의 관계는
총 구원의 과정인 : '예지-예정-소명-중생-칭의-양자-성화-견인-영화'의 과정중
에서 중생을 칭의 로 이어주는 중요역할을 하게 하여 줌으로 이 의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비로서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3. 올바른 칭의의 인식은 성화와 영화의 과정을 수반합니다.


칭의로써 인간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인식을 가질수 있습니다.
이 것은 나의 지적인 인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칭의- 전의 과정인 '-소명과 - 중생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반드시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진 후에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죄사함에 대한 기쁨만 가질 때에는 지적으로 구원과정을 이해했을 때에
생기게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까?' 하는
성화의 단계를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은 성령님에 의해서 주어지게됩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있을 때, 성령님은 능력이나
은사의 대상으로 취급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적인 마음이 있을 때는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으로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시는 분으로 모시게됩니다.
이때 성화의 길을 가야만하는 성숙함의 의무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이 예수님의 은혜를 고백한 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은 당신의 겸손으로 은혜가 무엇인지 확증하셨습니다.
은혜가 당신을 비천하게하고 모욕당하게 하였습니다.

은혜가 당신으로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죄의 짐을, 눈물의 짐을,

하나님의 저주의 짐을 지게하였습니다.

은혜는 당신의 옆구리에서 흐른 당신의 피와함께 흘러나왔습니다.

은혜는 채찍으로 맞은 당신의 그곳에서, 가시로 찔린 그곳에서,
그리고 못으로 박힌 당신의 그곳에서 나타났습니다.

천사들을 경탄케한 은혜, 죄인들을 복되게한 은혜,

마귀들을 놀라게한 은혜, 그것이 당신의 은혜입니다."


칭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구원받은 은혜에만 만족하고
머무는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
더욱 성화의 길을 걸어 내 주 예수님을 닮아가야 되겠다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 참 신앙의 삶으로 나아갈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을 모신 바른 칭의의 깨달음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노력을 다같이 기울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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