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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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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마 5:3-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지켜야할 규례를 내려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알맞는 백성이 되어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셨으며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산상수훈을 그의 백성에게 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이 두가지 명령은 따로 따로 여길 것이 아니요,
어느 한 쪽을 택하여 그것만 지킬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율법의 완성이며 율법위에 은혜가 있으므로
성도는 율법이 제시하는 기준 이상으로 살아야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핵심이 십계명이듯 산상수훈의 핵심도 팔복과 그에 따른 행위입니다.


1. 산상수훈의 정의


산상수훈이란 주님이 그의 제자들(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천국백성으로서의 삶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산에 오르사
그 들에게 들려주신 교훈을 말합니다.

이 말씀이 너무 가치있는 교훈이어서 '산상보훈'이라고도 불리우며
인간에게 주어질 가장 큰 복들이 기술되어있음으로
'산상팔복'이라고도 불리어집니다.

이는 천국의 대헌장이요, 신구약 전 메시지의 요약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교훈이 행해진 산은 디베랴 서쪽과 막달라 남쪽에 위치한
완만한 구릉인 "핫틴산"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팔복산으로 불리어지며
그 곳에 '산상수훈 교회'가 세워져있습니다.

산상수훈의 총 주제는 천국백성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윤리적, 종교적, "의(righteousness)"이며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세부분으로 나누어 말씀하셨습니다.
즉 서론 부분으로서 마 5:3-12절까지, 본론 부분으로서
마 5:13-7:12절까지, 그리고 결론 부분으로서
마 7:13-27절까지 3장에 걸쳐 말씀하고 계십니다.

서론에서는 천국백성이 지녀야할 기본자세와 그에 따른
8가지 복들에 대하여, 본론에서는 구원의 진리에 따라
의를 지향하는 삶에 대하여 마지막 결론에서는
이 수훈을 지키는 자와 안지키는 자에 대한
축복과 저주에 대하여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2. 산상수훈의 중요성


오늘날 신앙생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피상성''세속성''기복성'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과의 신앙생활과 대조해볼 때, 신앙은 점점
현실위주의 안일함과 단지 행복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영혼과 천국에 대한 본질은 점점 희석되어져가서 교회생활이
얄팍스럽게 변질되어가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의 주체는 세상과 그에 속한 것들이기 보다는
성경이며 핵심은 천국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성경을 인생의 필독서로 보고
매일 소중히 여겨 읽는 경우는 드믑니다.
 더우기 현실의 삶에 바빠 천국을 생각할 틈도 많지가 않은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값싼 은혜를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값싼 은혜에 젖어 구원을 쉽게 여기고 사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산상수훈을 대할 때, 도저히 나는
저 수준에 도달을 할 수 없다고 좌절하는 마음부터 생기게 됩니다.

산상수훈이 신앙적 윤리적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그만큼 높다고 여겨야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문제를 풀어주시기 위하여 '중생' '성령 내주 생활'
하고 살도록 성화의 삶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셔서 우리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알려주십니다.
세상과 천국이 따로 떨어져 있음으로 따로따로 생활해야 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구원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영접한 이 순간이
구원의 길을 가는 것임을, 또한 천국의 축복은 천국에 가서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니라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의 축복을 누리는 생활이
시작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이 축복된 삶을 지금부터 맛보고 살도록
천국시민의 바른 삶을 살게 알려주는 복된 말씀입니다.

주님은 율법과 같이 지키기에 불가능한 복음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말씀자체는 불가능해도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령님과 함께 지낼 때, 주님의 복음의 말씀을  따를 수 있습니다.

즉 초대 교회 교인들의 진정한 믿음 생활과 같이
다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에 따른 보상은 지금부터 누리면서 시작되게 하셨습니다.


3. 산상수훈의 핵심인 산상팔복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에덴동산 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때의 생활이 인간의 삶의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과 행복을 잃어버린 이유는 인간이 무능하고
모자라서가 아니라 누릴 자격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죄있는 인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관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첫째는 구원이고,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것을 누릴 수 있을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로 누리고 사는 삶이 행복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과 타락한 혼을 만족시키는 쾌락일 뿐,
영에는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참 행복은 에덴동산의 삶과같이 영,혼,육의 순서의 기쁨으로 살 때,
인간은 이 땅에서 참 행복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산상팔복을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이 행복을
찾아 살 수 있도록 길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1) 심령이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v. 3)

가난이란 부족하거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마음이 비어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모두 포기하고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심령에 다른 것을 채우면 세상의 것을 비울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욥 32:8] "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

전능자의 기운을 받으면 마음을 비우게 할수 있습니다.
이 때에 주어지는 것이 천국을 소유한 축복입니다.
이 것을 우리는 심령천국 이라고 부릅니다.
세가지 천국중 첫번 째 천국입니다.

앞으로 두번 째, 세번 째도 주어집니다.
그들은 바로 천년왕국과 하늘의 천국입니다.
그리고 심령천국이 천국의 시작입니다. 첫번째 복입니다.

2) 애통하는 자가 될 때 위로의 복을 받습니다. (v. 4)

애통이란 마음이 매우 슬퍼 우는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이 언제 가장 슬픕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가장 사랑하고 인간을 가장 사랑하는 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애통하는 마음이란 하나님을 잃어버린 아픈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통회자복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님이 내주 하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가장 큰 위로가 '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랑의 회복의 위로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가된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를 넘어선 기쁨입니다. 바로 후사까지 이루어지는 복입니다.

3) 온유한 자가 될 때 땅을 기업으로 받는 축복을 얻습니다. (v. 5)

기질은 성격이고 온유는 성품입니다.
성품은 성격이 길들여질 때, 생기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성품은 주님안에서 거듭나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예: 사도바울).
이때, 이 땅의 기업이 주어집니다. (에덴동산, 가나안 땅…등).

장막도, 사업도, 사역도, 이 것을 분깃이라고
다윗은 기뻐했습니다(시16:6편).
그리고 천국의 기업은 유업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땅의 기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시요!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십시요, 배가 부른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v. 6)

육신의 배고픔은 배가 곺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차원의 배고픔이요,
진정한 배고픔은 영적인 배고픔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40일 금식후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더 먼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중명한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사도바울 같이 예수님을 소유한 자가 가장 배부른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신의 배부름은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예: 12 제자들)

5)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었을 때, 긍휼의 여김의 복을 받습니다. (v. 7)

인간이 지닌 잣대는 판단의 잣대요,
하나님께서 지니신 잣대는 긍휼의 잣대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처럼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의 긍휼의 잣대를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안에서
모두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아니라 가족 입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하였음에도
하나님의 긍휼로 용서를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을 긍휼히여겨 죽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배반한 자녀 압살롬도, 자기를 저주한 시므이도,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아내 미갈에게도
원망하지 않고 긍휼하 여겼습니다.
그 댓가를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될 때 하나님을 뵙는 축복을 받습니다. (v. 8)

회개는 마음 속에 죄를 씻어 비워줍니다.
그 다음에 청결하게 마음을 유지 시켜주는 것은 말씀입니다.

[엡 5:26]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마음 속엔 무엇을 담아두느냐에 따라 정결과 부정이 정해집니다.
매일 말씀을 일고 묵상을 담아주면 청결한 마음이 나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을 만나게 되는 기회입니다.
구약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을 제일 많이 뵈었고,
신약에서는 사도바울이 승천하신 예수님을 제일 많이 뵈었습니다.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의미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진수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뵙는데 있습니다.
말씀이 이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7) 화평케하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v. 9)           

모든 화평을 가로막고 깨어지게 만드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모든 화평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들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와 나 사이에 언제나
예수님을 모시고 있을 때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로 하여금 상대방을 영혼의 차원에서 바라보게 하십니다.
지옥에 갈 것을 생각하면 불쌍한 마음을, 천국에 갈 것을 생각하면
기쁜 마음을 갖게 됨으로 잘 지내게 만들어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세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의 단계, 둘째는 아들의 단계, 셋째는 후사의 단계입니다.
자녀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만 아들의 단계는
원수를 사랑하고 자비함으로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눅 6:35-36).
그리고 아들에게는 기름부음이 주어집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될 때에 천국이 주어지는 복을 받습니다. (v. 10)

죄된 생활과 동류화 시키려는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요와 압박을 가합니다.
이에 따라, 예를 들어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됩니다.
스데반은 돌에맞아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의 핍박은 천국에서의  상급의 기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희망과 기쁨을 바라보고 넘어가야합니다.

신념은 현상을 주로 바라보게 하는 반면에,
믿음은 말씀이 가리키는 최종의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성령님이 신념을 믿음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심령천국은 천국의 시작이지만, 의의 핍박으로 인한
상급 천국은 천년 왕국과 하늘나라입니다.
더 높을 수록 더 큰 것입니다.

이상 주님이 들려주신 자격을 잊지 말고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령님과 동행할 때,
이룰수 있음도 아는것이 중요합니다.


4. 산상수훈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는 길


구약에서의 율법은 문자 그대로를 받아들여 각자의 힘과 노력으로
지켜 나가도록 주어진 행위계약 입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의 복음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깨닫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루어 나가도록 주어진 은혜계약 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구약의 율법같이
지키기 불가능한 명령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주님도 성령님의 능력에 힘입어 구원사역을 모두 이루고 마치셨듯이
우리들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수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1)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싫고 따르기가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이 죽듯이 곧 지옥에서 영혼이 죽습니다.
오직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구원의 밧줄인 성경말씀 입니다.
말씀의 줄을 매일 튼튼히 잡고 있는 사람은 산상수훈의 말씀은
당연히 지켜야될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알고 따르게 됩니다.

참 은혜는 구원으로부터 느끼는 것이지,
축복과 응답으로부터 느끼는 은혜는 선물을 주시는분 보다
선물을 더 좋아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은혜일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한번 바라보고 읽기를 원하십니다.

2)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삶만이 성화의 삶을 완성시켜줍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처소로 지음을 받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을 담지않고 이 세상의 어느 것을
담는다해도 그 영혼을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영이 비어있을 때, 혼과 육은 무능합니다. 아담이 영생과 지혜로
살 수 있었던 것은 혼의 능력이 아니라 영의 능력 이었습니다.

욥기 32:8과 같이 "전능자의 기운이 그의 심령에 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나의 삶의 주관자로 모셔들이면
나의 영과 혼과 육은 성령님에 의해서 다스려집니다.
성령님 안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다같이 예수님께서 주신 산상수훈의 말씀을 준행하며 살기 위해서
우리 모두 보혜사 성령님을 더욱 의지하고 복을 누리며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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