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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성령의 하나님
[요14:16-17]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실 수 있으신 길은
인간의 영이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입니다.
이것은 죄가 없는 상태에서만이 가능합니다.

죄가 몸 속에 들어오자 하나님의 영은 떠났고,
인간의 영은 죽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나, 거듭나게 되며는
그 영속에 하나님과의 교제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성령의 하나님은 우리로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로 들어오도록 인도하시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죄에 빠질 수는 있으나 죄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죄의 세력은 영의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구원의 길을 가기를 원하고는 있으나, 그길을 갈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죄의 값을 인간은 지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혼은 영의 길을 자각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혼이 영을 주관 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영은 혼에 속한 부분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혼이 영의 길을 택하기 원할 때, 영의 길로 들어서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이 필요합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시고 성령님의 역할이 바로
혼과 육에 속한 인간을 영에 속한 인간으로
변화시켜주시는 일이십니다.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있고 똑똑해도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치 인간이 아무리 건강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죽음을 부활로, 우리의 죽을 생명을
영생으로 바꾸어 주신 분이 허락하심으로 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주관하시고, 주님의 죽을 몸에
영생을 주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혼이 주님을 믿을 때, 그 믿음을 통하여
성령님은 주님께 역사하셨던 능력을
우리에게도 적용시켜주십니다.

인간이 영의 길로 갈 수 있음은 오직 혼이
주님을 선택하는 한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 결과 선택과 믿음을 통하여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나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은 구원의 문 밖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에서 문을 열어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어느 누구도 그 구원의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그문은 안에서 열어 주어야지만 열려지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을 여시고 우리를 맞아 들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다섯 가지 면에서 역사를 하십니다.
이같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구원의 길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1. 성령님은 보혜사 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항상 함게 계시며 도와주십니다.


[요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인간이 죄에 빠졌던 원인은, 죄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죄를 짓지 못하도록 저지할 도움을 줄 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통하여 인간은 단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가 없었을 때는 아담에게는
자신의 영생의 삶에 불가능한 것이 없었습니다.
피조물이라는 인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통하여
인간의 피조물의 한계를 알려 주셨습니다.
죄를 통하여 선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고 싶은 인식을 갖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도록 지음을 받았으나
하나님 대신 자기를 의지하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가 멸망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순종할 때, 또한, 창조주 를 하나님 답게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간이 알 때, 하나님은 땅으로 부터의 삶에서 우리를
하늘의 삶의 영생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깨닫기 까지만 허락하셨지
깨닫고 돌아올 수 있는 능력까지는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 때,
 도움은 시작되게 됩니다. 이 깨달음의 자리에 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다가 도와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이것이 인간이 다시 잃었던 진리를 깨닫는 일이고
진리는 진리의 영 이신 성령님과의 만남을
만들어주는 기회인 것입니다.

내가 진리를 찾고 진리를 따라 사는 한 성령님은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진리와 성령님은 하나 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내 안에 쌓이면 쌓일 수록 나에게 오신 성령님은 함께
동행하시며 곁에 계시고, 나중에는 네 안에 들어와 계시게됩니다.
진리는 성령님의 거하시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2. 성령님은 교사이시기 때문에 항상 우리를 가르쳐주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진리는 인간이 찾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을 깨달으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에 대하여,
구원에 대해서, 하늘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마귀와
영적 전쟁과, 재림과, 심판과 그리고 부활에 이르기까지
다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혼에 매여 이 땅에
육신적인 삶에만 깨달음이 묶여져 살고 있기 때문에
영에 관한 부분은 점점 무지해지고 맙니다.

인간은 죄 중에 잉태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나서는 육신 중심의 삶을 제일 먼저 살게됩니다.

그리고 또한, 혼과 죄가 지배하는 세상의 교육을 통하여
혼 중심의 삶, 즉 세상 중심적인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다가 삶위 허무와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말씀과 체험을 통하여 영적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어집니다.

혼이 영의 세계를 알도록 깨우쳐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영이 말씀으로 자라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에게 영의 세계에 대하여
특히 하늘나라에 대하여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이 어렸기 때문에 아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오순절날 성령의 임재하심을 받고
그들은 아는 것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양식은 우리의 영인 속사람을 자라게 만들어줍니다.
우리의 속사람의 완성이 부활후 천국에서의 모습이 되듯이
 우리의 진리의 깨달음의 완성도 천국에 가서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이땅에서의 진리의 깨달음의 한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과 신분으로 이 땅에서 사는데 필요한 부분까지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집안의 가정 교사로서 우리가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도록 말씀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3. 성령님은 조명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구주되심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성령님의 역할의 한계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예수님의 선포하신 말씀의 법주 안에서만 활동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활동의 주된 역할은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밝히 드러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증인 사역이십니다.

 우리는 귀로 듣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봄으로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
놀람과 확신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치 땅의 만물이 달빛을 받을 때와, 햇빛을 받을 때가 다르게 보이듯이  
해의 역할은 빛으로 남을 비추어 드러나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나타나게 하시고
주님의 구원사역이 얼마나 은혜로운지를 조명의 빛으로 보
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뚜렷한 모습은 용서에 있고,
주님의 은혜가 드러난 현상은 구원의 표상인 십자가에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나의 영안을 열어주실 때,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바로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전 12:3f]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주님은 사역시절에 많은 기사와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보는 사람들 시각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은 주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보았고, 나머지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예수님이
바알새블의 힘을 덧입어 기적을 일으킨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차이점은 같은 신앙, 같은 말씀을 지녔어도
성령의 역사하심의 차이에 의하여 주님을 다르게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튜헨리' "신앙이 성령으로 역사되지 않고는
그에게 복종하고 의지하여 살아가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주시라 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주석 p.180)

예수님이 구세주이신 것은 머리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서 깨달아지는 것임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증인 사역입니다.

 
4. 성령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불의한 것을 지적하십니다.


[요 16:8-11]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동물이 인간을 보는 눈과, 인간이
동물을 보는 것과는 많이 차이가 있습니다.

즉, 동물은 자신이 어떡해야지 유익이 주어진다는 면에서
주인을 이해하고 있는 반면, 인간은
동물의 행동 동기 까지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이 고난을 받고 있을 때, 네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각자 알고 있는 하나님을 욥에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닙께서 욥에게 직접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이 잘못 알고 있는
세가지 오류를 지적하시고 바로 세우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1] 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인간편에서는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죄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의 진정한 죄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죄인들을 용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길을 믿지를 않고 주님을 부인하고 구원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지은 모든 죄는 주님 안에서 용서되어질 수 있음을 볼 때,
진정 용서되어지지 않는 죄는 용서될 수 있는 죄보다
더 큰 구원의 부인죄 인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님은 제일 먼저 지적하십니다.


[2] 의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에 죄인으로, 심판으로,
멸망으로. 저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자리가 대속으로,
영생으로. 부활로, 영광으로 바라보고 가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중거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셨음을 증거하십니다.
인간이 주님을 못박은 의는 멸망의 의 였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의 바른 이해가 참 의 임을 알려주십니다.


[3]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심판하여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 바로 너희들도
죽으면 더 큰 불과 유황의 심판에 들어갈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벌이 무서워 감옥에 갈까봐 죄를 짓지않고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행위의 죄가 없어도 마음 속에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형의 집행이 죽음 후에 주어질 뿐입니다.
사후의 심판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5. 성령님은 인도자 이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인도와 계시는 가나안 땅과 율법이었습니다.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인도와 계시는 천국과 복음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의 성령님의 인도와 계시는 증인과 선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인도하심은 처음에는 이 땅에 백성으로의 삶,
그리고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서의 삶, 그리고 마지막은
하늘과 땅에서의 후사로서의 삶으로 진행하고 계심을 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아직도 많은 것이 남아 있습니다. 장래의 하나님의 계획은
지나온 것보다 더 심오하고 깊은 것들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만이 아십니다.
성도들은 마지막 환난에 대해 대비해야합니다.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 참가해야합니다.
주님의 재림에 준비해야합니다.
마지막 심판에 설 수 있어야합니다.
천국의 상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성도들은 증인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성령님의 마지막 사역은 우리로 증인이 되게 만드는 사역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한 인간의 삶은 긴 구원의 사슬에 연결되어 있는 한 고리에 해당됩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은 나로 하나님의 세우신 구원의 줄의 대열에
든든한 고리로 매어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권능수여의 의미는 순교의 정신에서 발견해야만 되는 일이기에
권능과, 증인과, 순교는, 하나로 묶여 있음을 봅니다.

오늘도 성령님은 증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는 그들만이 하늘의 상급을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님을 모시고 하늘의 상급을 받는
성도들이 다같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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