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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재창조
[사 65:17] 


하나님은 존재의 근원이시고 모든 의미의 마감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존재의 발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안에는 존재의 의미가 담겨져있어 그 의미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반영될 때까지 진행하는 것이 \
 
창조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창조의 주된 의미는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인간의 존재를 
 
얻기 위함임으로 인간을 중심으로한 만물들이 
 
보조로 지어진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영원을 기반으로 창조되어진 만물들은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내며 
 
사랑의 아름다운 조화가운데 인간과 더불어 공존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의미이며 인간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더욱 표현하여 줌으로 하나님의 
 
신적인 속성을 개발 할 수 있도록 보조역할을 하는
부가적 목적의미를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음 받은 인간은 부여되어진 영생의 기간 
 
속에 무한히 진정한 존재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의도하신 수준까지 자라나야만 하는 
 
의무와 축복이 함께 주어져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창조가 영원히 존속할 수 없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6일동안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가 모두 만족하게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마지막날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음으로 창조의 총 하이라이트는
 인간 창조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인간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반대로
 
 
불순종과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깨뜨리고 말았으며 
 
이로 인한 저주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모두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저주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롬 8:22]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지 않음으로 
 
죄로 오염된 이 세상은 모두 사라지고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의
 
구원을 통하여 거룩한 영적 자녀가 된 인간들과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새 창조가 요구 되어집니다.  


2. 재 창조로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곳일까요?


헬라어에서 새로운 것을 의미한 단어에는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네오스"와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카이노스'가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재 창조에 쓰여진 
'
새로운 '이란 말은 '카이노스'라는 단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재 창조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변형이나 갱신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 질서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카이노스'로 표현된 새 하늘과 새  땅은 죄악과 사망과 
 
고통이 지배하던 현재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구원받은 
 
거룩한 성도들만이 살 수 있는 깨끗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호크마 요한 계시록 21장 강해)

또한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성격은 이사야 65:1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1)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입니다.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사 65:18]


인간은 죽음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슬플 수 밖에 없고 
 
질병과 배고픔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두는 죄로 인한 저주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이런 것에 대하여는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사 65:17]하십니다. 

그 이유는 내가 완전한 환경에 알맞도록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으니 죽음이 없고 저주가 없으니 배고픔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살면서 누구나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삽니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인간이 그리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곳입니다.
 
더욱 나아가서는 성령의 열매로 신령한 성품이 된 성도들과 
 
기쁜 교제를 하는 곳임으로 낙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2) 마음껏 하고싶은 활동을 하며 지낼 수 있는 곳입니다. [사 65:21-22]


인간의 기쁨은 배불리 먹고 건강한데 있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더욱 기쁜 보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천국에 가면 하루종일 먹고 즐기고 노는 곳이라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천국에서도 우리의 할 일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일을 우리도 맡아 분담하여야하고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거처나 주변도 내가 관리하여야만 합니다. 

즉 내가 가장 좋아하는곳 으로 거처를 정하고 숙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환경에 천국 양식을 가꿀 수도 있습니다. 
 
백배로 수확되는 천국의 맛있는 열매를 재배해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서로 나누어가며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지낼 수도 있습니다. 
 
이웃과 어울려 더 좋은 공동 놀이터를 개간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의 재료들로 지어지는 건물과 도시는 망치와 못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능력에 의해서 
 
말과 능력의 손재주만으로 지어질 것입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우리도 하루 일이 끝날 때마다 
 
 "보기에 좋았더라."하면서 지낼 것입니다.  


3)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v.25)


이 땅에서는 인간과 인간과의 교제만 가능합니다.
 
 
다른 생명체와는 충분한 교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더우기 물질의 교제의 한계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데 있습니다. 
 
그러나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모두가 신령한 존재가 됩니다. 
 
같은 세계에서 같은 이해와 같은 사귐이 있는 
 
고차원의 존재들로 변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과도 보고, 듣고, 모시고, 대화하고, 기뻐하고
또한 각종 천국의 영물들과도
 대화와 그들의
재미있는 속성을 사귀며 나눌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는 그들 속에 하나님의 천만가지 아름다운 
 
속성 중 한 가지 씩을 다 넣어주셨기 때문에 서로 좋은 속성들이 나타나면 
 
신기하기도, 기쁘기도 하면서 서로 공유 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동물들을 먹이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동물들은 인간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같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피조물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평은 사랑할 때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사랑의 범주와 높이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범주까지 
 
이르러 만물을 품에 안을 수 있는 화평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3. 재창조 되어지는 새 하늘과 새땅은 천국과는 다른 곳입니다. 


현재 현존하는 천국은 영혼의 중간기 쉼의 처소로서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시기 전까지 머무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이 시작되면 이 땅도 하늘도 모든 세계도 
 
다 없어지고 오직 우주 공간에 심판대만 놓이게 됩니다. (계20:11)

하나님의 모든 심판이 죽은 자 산자를 막론하고 다 이루어지면 
 
그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어 생기게됩니다. 
 
그동안 죽은 자들은 천국 또는 지옥에 머물러 있었으나 백보죄 심판을 거쳐 
 
죄인은 영벌의 장소로 성도는 새 천지로 옮겨갈 것입니다. 
 
이때 성도들에게 오는 변화가 완전 신령한 영, 횬, 육으로의 부활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현재 죽어 구원받아 천국에가도 신령한 존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다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육신의 부활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과,
 
영혼이 죄성으로 인하여, 완전 영화 단계를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천국엘 가기 때문에 성령님이 완전히 임하실 완전 충만은 
 
다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백보좌 심판시 모든 영혼이 다시 부활의 모습으로 설 때에는 
 
첫째, 부활을 이루며 살았던 천년 왕국의 존재시보다 
 
더욱 완전한 신령한 모습의 존재가 되어 살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천국의 개념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구원받은 영혼들이 모이는 낙원이며 재림시 사탄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두고, 주님을 죽도록 충성한 성도들이 
 
다시 주님과 더불어 이 땅에 천년동안 통치하러 
 
내려올 때까지의 머무는 처소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이 끝나면 마귀와의 싸움도, 대치도 없어지기 때문에 
 
영원히 마귀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은 세계, 그 세계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며 
 
죄가 영원히 없어지는 세계가 바로 재창조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4. 재창조의 주역은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사역입니다. 


태초의 천지창조는 하나님께서 주역이 되어 이루어진 사역이며
 
 
성자와(요1:3)성령은(창 1:2) 이 일에 동참하시어 이루어진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재창조는 구원 사역의 연장이자 완성임으로 구속 사역의 주인공이자 
 
집행자이신 예수님께서 주관하시는 사역이 될 것이며 성부 하나님은 
 
심판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시며 성령님께서는 
 
온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사역으로 동참하실 것입니다. 

특히 재 창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탄과의 
 
영적 전투와 처벌 문제가 선행되어야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하심과 사탄을 영원히 지옥에 가두는 사역을 
 
직접 지휘하시는 분인 예수님의 최종사역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성도들의 각 행위에 따라 상금을 주실 것이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통하여 신부된 성도들과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삶을 
 
함께 영위해 나가시는 신랑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환경도, 사역도, 
 
유업도 함께 관여하실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실천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완성 하시는 일로
함께 동참하실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지상 사역으로
 
구원을 보여 주셨지만 그것은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사명의 일부에 속한
작은 일에 
불과할 뿐이며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회복하신 예수님은 
 
천상 사역의 거대한 프로르렘을 진행하시고 계신 영의 세계의 주인공이십니다.   

성도는 구세주 예수님만을 국한하여 주님을 섬기기보다 우리 사후 세계의 
 
총 주인공으로서의 재창조 주역으로서  주님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5. 재 창조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사는 성도들의 자세
 

1)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며 살아야합니다. (벧후 3;11)


우리는 약혼한 처녀와 일반 처녀와는 사고와 행실이 다른 것을 보게됩니다. 
 
그 이유는 약혼한 예비 신부는 신랑을 생각하고 시댁을 생각하고 
 
시댁의 분위기와 수준에 맞추어 살아야 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쁨은 그녀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의 예비된 신부들입니다.
 
주님의 수준으로, 천국의 분위기로, 새생활을 할 수준에
맞게 지금부터 준비해야만합니다.
 
 
결혼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듯,
천국도 죽으면 그냥 가서 사는곳이 아닙니다.
 

가야할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의 삶입니다.
 
 
세상을 사랑할 때, 신부의 신분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그리며 살아야합니다. 

  

2) 예수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합니다.(벧후3:18)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는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는 서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전자는 체험을 주로 여기면서 느껴지는 감정이고, 
 
후지는 주님에 대한 모든 말씀을 읽고 지식적으로 깨달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날 때 성숙하게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버릴 수 있는 희생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극치는 자신의 포기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자신을 포기하신 분이십니다. 
 
그같은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십자가를 바라보아야합니다. 
 
6시간을 고통중에 달리시어 돌아가시는 모습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합니다. 

또한 지식은 인간을 성장시킵니다. 인간은 양식으로 
 
성장되는 아니라 지식으로  성장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인격이 모자라는 육신은
 
아무리 커도 어린아이로 취급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의 겉사람은  커도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속사람은 
 
여전히 어린아이라 영적인 구실을 제대로 하지못하고 있음을 봅니다. 

 사람은 관심 있는 것에 대하여 파악을 제일 많이 하게됩니다.
 
현재 우리의 관심은 세상입니다. 따라서 죄악이 성장 할 뿐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관심은 주님이어야 합니다. 
 
그때 성령의 열매와 은사로 신령하게 자라나게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구세주로, 주인으로, 
 
세례주로, 신랑으로, 심판주로, 사역의 주관자로, 재림주로, 인도자로, 
 
처소 예비자로, 영적 전투의 대장으로, 영생을 주시는 분이요, 
 
상주시는 분으로, 스승이요, 재장조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부적으로 깨닫고 주님과 함께 동참하며 살 때, 
 
재창조에 대한 성도들의 바른 신앙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다같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으로 바른 신앙관을 정립하고 
 
사는성도들이 다같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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