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뉴질랜드 에바다교회


“율법과 복음” 
[마 5:17]



오늘날 신앙생활의 특징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신으로 마감하는 풍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깊어지면 더욱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데 
반대로 세속을 닮아 가는 이유는 
신앙이 세상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죄의 뿌리는 깊고 
신앙의 뿌리는 얕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래 신앙의 뿌리는 하나님께 있었고 
죄의 뿌리는 마귀에 있음으로 
당연히 신앙은 죄의 뿌리보다 깊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신앙의 뿌리인 하나님을 제대로 찾게 하여주지 못할 때 
신앙은 표류하게 됩니다. 

왜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까요?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살펴봄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을 때는 
인간의 삶의 기준은 양심에 있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마음으로 항상 기준이 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바른 양심만 가지고 산다 하여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지 속에 죄가 들어오면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영속의 양심은 
비대해진 죄성의 혼에 눌리면서 
올바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혼의 의지가 선악을 구분 할 수 있는 법을 
아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수여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한 
인간은 다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 
육신 속에 욕망이 죄의 중독으로 커지면서 
도저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타락한 죄인의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자력으로는 양심도 계명도 지킬 수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내어
죄인 된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면서 
죄인의 신분을 바꾸어주시고 
이에 맞는 새 기준인 복음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앙은 복음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죄 씻음을 받았고 거듭났으며 
성령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사는 
거룩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구원의 완성 계획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듭난 것은 영이요, 
혼과 육신은 양자로서 붙어 갔다는 데 있습니다.
즉, 거듭난 영 속에 죄성과 
욕망이 한 지체 속에 머물고 있는 현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사역 중에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역이 바로 “성화 사역”입니다. 

성령님은 육신의 소욕은 다스려 주시지만 
혼의 죄성은 진리를 가르쳐 주심으로 
개심하도록 인도하여주십니다. 

이 같은 성화과정에서 
성도인 우리들은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명에 비추어 
더욱 죄에서 떠나 성결의 자리로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1. 율법의 역할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기준”
율법이 있기 전에는 양심이었으며
율법이 수여된 후로는 계명이었습니다.

죄는 양심보다 강하고 죄성은 본성보다 강하기 때문에
인간은 한번 죄에 중독된 이상 죄가 인간의 삶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셨는데
이들이 번성하기 전까지는 노예라는 신분과 환경으로 
죄 된 생각과 죄 된 욕망이 분출되지 않도록 
바로 왕의 압제로 막아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출애굽을 하면서 자유를 누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할 하나님 나라의 법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를 율법을 모세를 통하여 내려주셨는데
이것은 크게 세 분야로 나눠집니다.

[1] 도덕법
이는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기본적 윤리강령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십계명이며
이 계명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따른 것이므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지켜야만 하는 불변의 법입니다.

[2] 의식법
종교생할에서 지켜야 할 제사법과 성결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게 하시고
여러 가지 제사법과 제사장 및 성도들의 행실 등을 규정하여
하나님께 나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식법은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오시기 전까지 예표하는 의식이므로
주님께서 오신 다음에는
실질적인 제사의식은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3] 시민법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바른 규범으로 주어진 것으로 
재산법, 결혼 및 이혼법, 보상법, 민사 형사재판법…… 등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법은 시대와 생활 수준에 맞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과학, 문명, 인구, 문화, 제도가 바뀜에 따라
변동되는 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이 다소 변경될지라도 
그 법에 담긴 원리나 기준만은 계속 적용되어야 바람직한 법입니다.

이 같은 성문법 외에도 
유대인들에게는 소중히 여기는 구전법인 “미쉬나”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모세가 아론에게 구전으로 전하고 
아론이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그리고 12 지파에게, 
선지자들과 교법사들에게 전하여 내려온 것입니다.
마지막 구전의 완성은 
힐렐의 가문에서 오랜 구전을 성문화한 것으로 
주전 66-70년 경 유대민족의 전통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이 구전은 바리새파의 소산으로 
바리새인들은 이 구전까지도 철저히 지킨 율법주의자들이 되었습니다.



1) 율법은 죄를 구분하고 죄인을 형벌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정의롭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로 세우며 
보존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있기 전 백성들은
무엇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죄가 되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였으나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을 통하여 
올바른 신앙생활과 삶의 바른 규범을 알고 지키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를 어겼을 경우 
율법의 판결은 매우 엄중한 것으로서 
형벌의 두려움으로 범죄를 예방하는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이 범죄를 다 몰아낼 수 없듯이
구약시대에도 죄는 날로 늘어갔으며
이후에는 법을 집행하여야 하는 지도자들조차 타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에도 법보다도 주먹이 앞서듯 
과거에도 법보다는 욕망이 앞선 인간의 연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약이 많아지면 병도 많아지듯이 
율법도 많아지면서 죄도 더욱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자력으로는 죄를 다스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2) 율법은 세상 최후의 심판 때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정죄에 대한
절대적 기준의 역할을 합니다.

율법은 심판주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수여하신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심판 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보혈로 죄를 용서함 받았기 때문에 관계가 없지만 
충분히 회개치 않은 자들이나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지 못한 성도들과 불신자들은
율법의 기준에 의해서 죄가 규명되고 심판 받게 됩니다.

특히, 십계명은 심판의 주 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십계명을 모르고 살고 있는 불신자들은
탐심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큰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 또한 탐심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


율법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은혜의 계시였으므로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를 알려주는 반면 
죄의 대속은 동물의 제사법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본인의 죄는 완전히 씻음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사함과 구원 면에서 율법은 일시적일 수 밖에 없으며
죄가 더욱 증가함에 따라 
율법으로는 더 이상 죄의 문제를 처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게 되었으며
죄를 짓지 않게 하기 보다 죄 자체를 끊어버려야 하는 
구원대책이 절실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인 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의의 자녀로 신분을 바꾸어 주셨으며
짐승의 피로 제사 드리던 율법의 제사법을 폐지하시고 
스스로 제물이 되어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면 좋았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왜 구약의 율법시대를 지나게 하셨을까요?

이는 인간이 발전되어가는 변천과정에서 죄도 따라 발전 및 변천되어지기 때문에
시대 및 환경 속에서 짓는 죄가 무엇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죄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을 깨달았을 때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바라보게 되며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구원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자체는 구원을 주지 못하지만 
인간의 정죄의 당위성과 구원복음의 필요성을 인식시켜 
복음으로 인도하는 인도자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의 시작은 율법의 한계에서부터 출발되며
죄사함과 구원의 완성은 천국을 계시하여 주는데 
무척 희망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의 삶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또한, 천국에 들어올 경건한 자들을 
정한 숫자가 차기까지 얻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들어와 구원받을 자의 숫자도 거의 찼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자들이 많이 생기자 
천국에 대한 계시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애굽에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로 계시가 되었듯이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천국이 진정 성도가 살아야 할 곳으로
계시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가나안 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의 지켜야 할 법이라면 
복음은 천국 백성들이 지켜야 할 수준 높은 은혜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서 
세 가지 단계를 통과하여 구원에 이룰 수 있게 됨을 봅니다.

[1] 율법 이전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는 범죄하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만 받고 있었습니다.

[2] 율법이 주어짐
율법이 주어짐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죄를 짓지 않으려 시도하지만 
절망 속에 빠져 구원의 상태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3] 율법의 완성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율법에서 자유를 얻고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방법은 행함이었으나 
인간의 행위가 온전치 못함으로 복음의 방법 안에서 
믿음으로 율법의 완성이신 주님의 혜택을 값없이 입게 된 것입니다.



3. 율법과 복음의 조화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유지시켜 줍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구약의 “심판의 하나님” “사랑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의 “영적인 신랑”이 되셨습니다.
은혜의 시대가 왔으므로 모든 법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율법을 폐지, 또는 
무용지물로 여기는 신앙풍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점점 자녀들은 방자하게 되었고
웬만한 죄는 회개하면 모두 용서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관대함만을 의지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복음의 진수는 
사랑과 은혜 안에서 자발적으로 율법을 수행해 나가는 
하나님의 자녀 로서의 삶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산상수훈 은 은혜의 율법이고
주님의 두 계명은 십계명의 요약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다면 
이는 자유주의적인 신앙관이나 세속주의적인 기복신앙
추구하는 사람들의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모세가 기준이었습니다.
모든 백성은 모세의 수준까지 자라나는 신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기준이 되십니다.
아무리 모세의 신앙과 인격이 훌륭하였다 할지라도 
주님에 비하면 한낮 죄인 된 인간에 불과합니다.

율법의 표본이 모세인 반면
은혜의 표본이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들은 모세의 표본을 넘어서 
주님의 표본에 이르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의 조건이 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율법은 성화 가운데 이미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결의 자리인 성화 속에는 
율법의 요구가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복음과 따로 폐지되어야 할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복음 속에 기본으로 포함된 사랑의 준수사항 으로 지켜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이 그 속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준수 요구로부터는 면제받았으나
율법의 정신만은 우리 삶의 지표로 삼아 
자율적으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야 합니다.

복음의 축복 속에서의 신앙의 타락은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린 데서 오게 되는 결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이시지만 
언제나 한 손에는 가 들려져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는 율법에 의해서 징계로 내려집니다.

이를 알려주시고 올바른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성령님 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과제는 우리를 주님의 닮은 영화의 수준까지 올려놓는데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복음은 예수님을 주셨으며
율법과 복음을 합하여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구원을 넘어서 성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같이 되십시다.




1 2 3 4 5 6 7 ··· 93 
BLOG main image
뉴질랜드 에바다교회
뉴질랜드 에바다교회입니다

카테고리

Menu
Notice
교회소식
주일설교
Christian Life
Bible Study
Media
Life
Resource
Sch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