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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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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의 백부장
/ A centurion of Capernaum,
         (마 8:5-13, 눅 7:1-10)      
   


세상에서는 사람을 평가할 때, 외모와 능력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러나 신앙에서는 오직 믿음 하나로 평가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은 육신적인 삶의 터전이요,
신앙은 영적인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천국의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신앙인으로 세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 사람으로 참신앙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8: 11-12].

천국은 혈통과 신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임을
이방인 백부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1. 성경에서 나오는 믿음의 백부장들의 예

백부장이란 직분은 로마 군단 소속 장교의 호칭으로 약 100명의
병사들을 직접 지휘하는 중대장 급의 계급으로 하는 일은
주로 점령지의 치안유지, 반란폭동 제지, 식민지 백성들을
지배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는 항상 적대관계였으며
대부분 로마 병사들을 잔인하고 난폭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다섯 명의 백부장들에 관한 특별한 언급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1) 이달리야의 백부장 고넬료는 기도와 구제를 많이 하여
하나님께 그의 행위가 상달된 사람이요. [행 10:22]

2) 예루살렘의 백부장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폭도들에게
위험을 당할 시 천부장이 채찍질하려 하자 로마사람 임을 전하여
위기를 막아주었으며 [행 22:26)

3)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는 사도바울을 로마로 우송할 시
그에게 모든 편의를 베푼 백부장이고 [[행 27:1]

4) 발라도의 명령으로 십자가형을 지휘한 백부장은 주님 돌아가심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한 백부장이고 (막 15:39)

5)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주님께서
그의 큰 믿음을 칭찬하신 백부장입니다. [마 8:10]    


2.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전시에는 어느 곳이든 상부의 명령에 따라 목숨을 걸고 나가
싸웠으며 그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거칠고, 짓밟고,
난폭한 기질의 성향이 강한 분위기 속에서 사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극히 작은 정복지
이스라엘의 촌 갈릴리 지역에 배치되었다는 것은
그에게는 출세에서는 벗어난 퇴역군인과도 같은
암담한 현실에 놓여있는 것과 같은 실정이었을 것입니다.

전혀 종교에 무관심하게 지냈던 그의 인생은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자 생활에 바빴던 삶에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삶이 달려갈 때는 무시됩니다.
그러나 멈출 때는 스며들어오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부장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눅 7:3]

문둥병자를 낫게 하신 일 (마8: 2-3)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 (요 2: 1-11)
왕의 신하를 고치신 일 (요 4: 46)
더욱이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 (눅 5:18) 등이

모두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 임으로
유대인의 종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주님의 말씀과 기적은
그로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사람은 신앙의 눈이 열리면 그전엔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통과 아픔을 볼 수 있고, 허무와 진실을 볼 수 있고,
천국과 영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정복당한 민족을 긍휼이 여기게 되었고
그들을 압제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사랑과 이해로 도와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교로 개종하게 되었는데
이 당시 개종자에는 초보적인 "문의 개종자, Proselyte of the Gate"
할례를 받은 "의의 개종자, Proselyte of the Righteousness"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그룹에 속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회당을 지은 것으로 보아 의의 개종자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이 같은 신앙생활은 그 주변의 백성들과 장로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삶이 바꾸어지게 되었으며
그의 사랑하는 마음은 심지어 종일지라도 질병의 고통을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주려고 주님께 몸소 찾아나가
무릎을 꿇고 부탁을 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었습니다.

지금도 가버나움에는 유적으로 보이는 '텔훔'(Tel Hum)에 아름다운
대리석의 옛 회당의 유적들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 회당이 바로 이 백부장이 건립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역사가들은 추축하기를 백부장의 건립한 회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그의 신앙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1)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마 8: 6]

종은 노예와 마찬가지로 돈으로 사오거나 전쟁에서 사로 잡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대개 종을 사람으로 취급하기 보다는 도구로 여깁니다.
지금 병든 종도 어떻게 종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주인이 군인인 것으로 보아 포로로 잡혀진 자로 보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백부장 곁에서 갑옷과 투구를 닦고, 방을 청소하며,
음식을 만들고 심부름하는 그의 시중드는 일꾼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고 나서는 인간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시작은 "나의 권리는 없다" 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모든 권리는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알고 살므로
바른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물질도, 능력도, 건강도)
그랬을 때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백부장이 지닌 것은 권력, 소유, 능력입니다.
그는 그 것을 어디다 써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게 만들어줍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들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봉사를 하게 만들었고
종을 사랑하는 마음은 예수님을 찾아나가
사랑하는 자의 생명을 간절히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같이 진실된 사랑은 지신의 체면 위신을 넘어서게 만듭니다.
그 것도 하찮은 종의 생명인데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지배자가 직접 주님께 무릎 꿇고 사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과 이웃사람들의 시선을 제일 많이 의식하고 삽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나님의 시선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살려는 사람입니다.    
   실천되는 사랑만이 하나님의 시선을 중심으로 여기고 산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그는 군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셨을 때는
하나님의 훌륭한 자녀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삶의 본질,
사랑이 우리의 지니고 있는 지위, 신분, 명예, 소유보다
근본이 되어야 함을 보여준 참 신앙인이었습니다.

2) 겸손을 실천하고 산 신앙인이었습니다. [마8:8]

겸손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내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 때에 갖추어 지는 예의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는 능력의 지도자로
이스라엘 200만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끌어냈으며
권능으로 홍해바다를 갈랐고 성막과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인간이었으나 항상 겸손하고 온유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이 주님께 아뢰기를

"주께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한 말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깨닫고
겸손으로 대답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은 이방인이며, 살인한 죄인이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불신자였던, 반면에 주님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거룩하신 능력의 주님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님의 지시로 고기를 많이 잡은 후에 아뢰기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며 자신을 깨달은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은 이성 중심으로 신앙 생활할 땐ㅡ 주님은 '말씀으로
깨달음을 주시는 훌륭한 종교가'로 여기게 됩니다.

또한 감각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할 땐ㅡ주님은
'응답 주시는 능력을 지니신 분'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중심에 신앙이 되면 주님은 내 죄를 사하시고
나를 천국으로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깨닫게 되어
죄인과 그리스도의 위치를 정확히 지켜 겸손해 지게 만듭니다.

신앙의 출발은 각자 당면한 문제로부터 출발하지만
신앙의 생활은 죄를 깨달음으로부터 거듭난 생활로 실제화됩니다.

이방인인 백부장은 율법을 지키고 산 유대인보다
훨씬 자신이 더러운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죄는 주님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회개는 주님을 소중한 분으로 여겨 사랑과 겸손으로 섬기게 만듭니다.

3) 주님까지 인정한 가장 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마 8: 10]

백부장은 권세에 대하여 군인생활을 통하여 배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인용하는 권세란 말도 로마 황제의 권한을 가리키며 한 말입니다.

즉, 자신은 로마황제의 권세를 위임 받은 사람임으로
백부장의 명령이 황제의 명령과 동일시되어, 백성들이 따르듯이
주님 또한 하나님의 권세를 지니신 분임으로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대변하는 효력을 갖춘 말씀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말씀만 하시옵소서." 라고 믿음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백부장이 주님을 생각했을 때 가시적인 것보다
비가시적인 존재이심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봅니다.
이와 반대되는 예로는, 문둥병 걸린 나아만 장군이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병을 고치러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 갔을 때
그는 기대하기를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상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왕하 5:11]
하였습니다.

이는 믿음과 신념을 혼동한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즉, 신념은
확신에서 비롯되며 확신은 경험과 확인으로부터 생기게 됩니다.
즉, 혼과 육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말씀으로부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심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진리 (레마)로 우리 영혼 속에 살아있도록 심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주시는 "계시""말씀"
일생을 통해서도 잊어버리거나 희미해지지 않습니다.
심어져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알 때에 믿음이 바로서게 되고 믿음이 바로서면
말씀을 어떤 외형적인 것보다 우선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요 20:29]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분량만큼 은혜와 축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백부장에게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마 8:13]
하신 것입니다.
말씀과 인격을 동일시 여기는 믿음, 이 믿음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음으로 어떤 때는 믿기도 하고
어떤 때는 믿기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과 하나님의 인격을 동일시하지 않고,
말씀과 내 인격을 연결해서 읽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쪽 편에 서서 읽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능력으로, 위로로, 계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주님의 말씀과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깨달아 하나임을 확신한 믿음입니다.
오늘날 도마와 같은 우리에게 믿음을
새롭게 해주는 참신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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