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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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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종의 선지자 요나
/Jonah [욘 1:3]



1. 인적 사항


요나는 이방나라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구원을 위해
택함을 받은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가드헤벨이라는 지역
(나사렛에서 약 4Km 북동쪽 지역) 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부친은 스불론 지파의 후손인 '아밋대'
'나의 진리'라는 뜻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이름으로 보아
신앙의 가문이었음을 알수있으며 아들의 이름을 '요나'(비들기라는뜻)
로 지어준 데는 '하나님 앞에서는 비둘기같이 순결하며
죄와 재난에 대해서는 비둘기처럼 슬피 울어야 함'
상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나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시기였던
B.C.793-753년까지 북이스라엘에서 사역한 선지자였으며
그의 말년에 요나서를 쓰고 삶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히브리인 전승에 의하면
그는 엘리야가 살려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었고
그 후에 엘리야를 따라 다녔으며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해 보냈던
그 소년 (왕하 9:1-6)이라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2. 시대적 배경

요나는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왕 2세의 통치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이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이르리라" [왕하 14:25] 란 예언으로,
당시 이스라엘이 수리아의 억압을 받고 있을 때,
이 예언은 참으로 희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맛어귀란 북쪽 수리아의 주요도시로
이스라엘과 북방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며
아라바 바다란 사해바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원래
영토를 (요단 동편까지) 되찾게 됨을 나타내주는 말입니다.

이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회복을 이루어주심에 따라
요나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로써 인정과 호감을 받고 있었음으로 자신의
사역은 오로지 조국을 위해서만 부르심을 받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니느웨로 가서 사역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의식적으로 피하여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말씀에 불순종하고 니느웨와는 반대방향인 다시스로 떠났습니다.

한편 당시 앗수르는 잦은 왕들의 통치 변화가 이루어졌던 시기로
- 살만에셀 3세: B.C. 783-773,
- 앗술단 3세: B.C. 773-755,
- 앗술리나리 2세: B.C. 755-745년
이전 왕들의 통치시대에 비해 국력이 약화되어 있었으며
특히 북방의 신흥국가인 '아라랏'과의 전쟁이 장기화 됨으로
나라가 침체 국면에 접어든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택하사
 니느웨로 보내셔서 그들을 회개시키게 하셨는데
이 시점에는(B.C.765-759) 나라에 큰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B.C.763년 6월 15일에는 완전한 일식으로
앗수르 땅에 칠훍 같은 어둠에 휩싸이는 불길한 징조로 인하여
민심이 상당히 불안한 가운데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요나 선지자가 단 하루 동안만 선포한 심판의 메시지로도
왕과 백성및 니느웨전체가 회개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랜드 주석 요나서 참고)


3. 요나의 성품

사람의 성품은 자신의 일생을 결정하는 주요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
좋은 결과 또는, 나쁜 결과도 맺게 됩니다.
만일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쓰여진다면
이기적인 삶이 될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쓰여진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품의 주인인 자아를 버리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멋대로 행하게 됩니다.
요나 또한 자신을 온전히 버리지 못한 특별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1) 시기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욥 1:2]

북 이스라엘 백성에겐 앗수르는 언제나 싫은 적국입니다.
단 한번도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움이나 혜택을 준 적이 없고
오히려 언제나 지배하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나를 항상 대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결코 좋아할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그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싫어도 하나님께서 택하신다면
나의 감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요나의 마음속에는 국내에서의 사역이 잘되어지고 있으므로
안주하고 싶었던 마음과 아울러 또한,
 적국의 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받으면
결국 자신의 나라가 불리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징계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같은 마음은 그의 사명을 져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탐심, 안일, 시기심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임을 알고
고난이 닥치면 이 부분들로부터 회개하며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개 말씀을 중심으로 삽니다.
그리고 말씀을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그 결과 정죄합니다.
그리고 단언합니다.

즉, 불신자들은 지옥에 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당신들은 멸망 받아야만 된다고 단언하는 것'은 안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이란 인식한 것이 행동으로 나타날때 표면화 됩니다.
우리는 단지 현재만을 판단하여야 마땅할 뿐
미래에 대한 일은 단정하면 안됩니다.
사람과 환경은 언제나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는
이방국가들은 징계를 받고 멸망되어야만 된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결과 그의 고정관념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싫으면 부분순종,  아니면 억지로 반 순종을 하며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은혜나 축복이 줄어들 뿐, 징계는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순종은 다릅니다.

고치면 살고 고치지 않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예: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요나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바다 속에 던져짐을 당하는 징계를 받음으로 버려야만 했씁니다.


3) 의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그러나 오랜 응답이 없이 계속해야지만 되는 기도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느 세월에나 응답 받게 될까?”
또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무응답이겠지”…… 등등)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습니다. [막 11: 24]

즉, 성급함이 의심을 갖게 만들어줌을 버려야 함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성급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결과가 궁금했습니다.
정말 40일만에 멸망이 주어질지,
구원이 주어질지 기다려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자신이 선포한 구원의 반대 현상이 이루어지길 바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깨우쳐주시기 원하셔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고생하지 않도록 박넝쿨을 자라게 하시어
그늘에 앉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도 잠깐, 박넝쿨 잎사귀가 곧 시들어버림으로
그늘이 없게 하시고 더욱 뜨거운 햇빛을 쪼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면 당장은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안일하다고 생각할 때, 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성화의 은혜'입니다.

당면한 문제는 언제나 내가 자라면 지나가게 됩니다.
요나는 자신이 아끼는 박넝쿨과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니느웨백성 12만 명의 영혼을
비교해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 성숙하게 자라게 됩니다.  


4. 요나 신앙의 특징

신앙생활이란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한번에 쭉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다가는 쉬고, 또 가다가는 힘들어 뒤로 내려오고
그렇다가는 또 올라가고 이렇게 하면서
결국 끝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쉴 때는 세상일에 심취할 때이고,
뒤로 갈 때는 세상일에 바빠 빠져있을 때이고,
올라갈 때는 말씀 따라 살 때입니다.
영적인 민감함은 성령님을 의지하고 있을 때,
바로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멈춰있는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우리에게 신앙에 뒤쳐졌다가
다시 회복으로 올라가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 선지자였습니다.


1)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질줄 아는 선지자였습니다. [욘 1:12]

사람의 죄악은
하나님께서 제일 잘 알고 계시고 그 다음은 자신입니다.
만일 인생에 고통이 닥쳐왔다면
그 원인을 하나님을 의식하고있는 자신이 제일 먼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 을 피하고, 자신이 먼져 해결하려 듭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에 관한한 하나님의 개입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했던 행동을 보면 잘알수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최후는 멸망으로 끝나게됩니다.
또하나는 다윗왕이 행하였던 행동입니다.
그는 범죄후 하나님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죄를회개함으로 용서를 받게됩니다.

항상 내 자신의 방식은 고통 없이 말로 쉽게 지나가려는 방식이고
하나님께 맡기는 방식은 징계를 감수하는 방식입니다.

요나는 풍랑이 자신의 죄로 인하여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선원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다에 던지우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자신을 맡긴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우상을 숭배했던 선원들을 구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다가 잠잠해지는 기적을 본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제물을 드리고 서원하였습니다. (욘 1:16)
신앙은 죄에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항상 하나님앞에 맡김으로
해결해야함을 요나 선지자는 보여준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선지자였습니다. (욘 2:1-9)

성도의 가장 큰 괴로움은
육신의 고통도, 환경의 어려움도, 대적의 위협도 아닙니다.
그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고 떠나셨다는데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어떤 어려움도 잠시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버리신 고통은
지옥에 가서 영원히 겪어야 되는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지 않도록 늘 회개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음을 알았습니다. (욘 2:4)
그리고는 회개를 하였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참된 회개기도의 특징은
죽음의 처지에서도 감사를 드린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드린 기도를 히브리어로 '팔랄' 이라고 부르고
이는 감사기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요나는 감사기도를 드리게 되었을까요?
물고기 뱃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바다 속에서 3일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속에 큰 공기 허파나 부레가 있는 곳은 견딜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입니다만, )

진정한 회개는 가장 불행한 처지에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죽게되도 천국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하면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알기때문입니다.

요나는 절망속에서 회개기도를 드림으로 고난에 감사하는 마음이
진정한 회개임을 우리에게 보여준 신앙인이었습니다. (욘 3:4)


3)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욘3:4)

선교지의 특징은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 풍속, 문화, 사고…… 등이 다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 신변의 염려와 적국의 분위기에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대로를 걸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습니다.
담대함이 없이는 선교사역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여 준 행위입니다.

담대함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따릅니다.
소심함에는 인간의 애쓴 노력만 남습니다.
주의 일을 할 때나 세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를 위축시키는 세력이나 핍박하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굽히면 안됩니다.
대적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거역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물질, 권세, 무력…… 등은 우리를 능히 해코지 할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들과의 관계를
세상적인 유대 관계하에서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세상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한번한 타협과 양보는 자위를 갖게 해줌으로
계속 내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주님께 순종하는 믿음은 어느때든
성령중심 신앙생황을 하게 만들어줍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따르는 생활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결국 니느웨백성 십 이만 명을 구하는
이방인 선교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구약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1. setba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은혜로운 글 잘 보고갑니다.

    2013.03.03 04:42
  2. 빛나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2017.03.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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