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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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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에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한
선지자 / 미가(Micah)



1. 인적사항


히브리어로 '미가'라는 말은 '미가야'로서(렘26:18)
그 뜻은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이냐?'란 의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서쪽 블레셋 성읍 가드와 근접한 시골에 있는 -
'가드모레셋'에서 태어났으며, 귀족 출신의 선지자 이사야와는 달리
서민적 삶을 통해 사회부조리를 몸소 체험하고 겪은 선지자입니다.

미가는 호세아 및 아모스(북 이스라엘), 이사야(남유다) 와 동시대에 활동한
남유다의 선지자였으며, 그가 사역한 시기는 남유다 11.12, 13대 왕인
요담(B.C.747-731년), 아하스(B.C.731-716년), 히스기야(B.C.715-687년)등
세명의 왕들시대에 걸쳐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는 B.C.700년 경에 미가서를 썼으며 예루살렘에서의 말씀 선포는
히스기야왕으로 하여금 종교개혁을 단행하도록 영향을 끼친 선지자였습니다.


2. 시대적 배경



11대 유다의 왕 요담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도를 행하였음으로 나라도 강성하고
융성하였으나 그의 아들 아하스가 왕위에 오르자 선왕이 뒤를 쫓지않고 우상숭배와
악행을 저지르므로 아하스는 다윗왕가의 가장 사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이에 특권계급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난한자들을 핍박해 재물을 착취하였으며,
제사장들은 물질과 뇌물에 눈이 어두어 귀에 듣기 좋은 말만 지껄이는
거짓 선지자들이 되었습니다. (3:11)

내적으로 백성들이 부패가 극에 달하였을 때, 외부적으로는 북방의 신흥제국인
앗수르가 본격적인 남진 정책으로 디글랏 빌레셀 3세(B.C.745-727년),
살만에셀 5세(B.C.727-722년), 사르곤 2세 (B.C.722-705년),
산헤립(B.C.705-681년)등이 남.북 이스라엘 두 왕국을 끊임없이 공격해왔으며
그 와중에 북왕국은 B.C.722년에 멸망하였고 남왕국은 B.C.701년에
산헤립의 침공으로 멸망직전의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남유다는 물론 북 이스라엘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3. 사역의 업적


1) 최초로 메시야가 탄생할 장소를 베들레헴으로 예언한 선지자로 이는
                             700년이나 앞선 예언이었습니다. (5:2)
2)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한 최초의 선지자였습니다. (3:12)
3)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타락에 강한 책망을 통해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지자였습니다. (대하 29:5-11)
4) B.C.700년 경에 예언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미가서를 기록하였습니다.


4. 신앙의 특징


1) 미가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참 선지자였습니다. (3:8)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일꾼들은 세상에서의 자격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자격을 얻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여호와의 신의 임재입니다.

지성의 힘이 강할 때, 교리적인 가르침에 치중할 수 있고,
재능이 강할 때 프로그램적인 사역에 치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성이 강할 땐, 죄와 구원에 관한 메세지가 전달되게 됩니다.

미가 선지자가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사역자'인 것은
담대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책망하는 자는 항상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
심지어 죽음 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또한 경제적인 빈곤과 핍박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러한 이유때문에 많은 사역자들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리한 말을 증거함으로 반발이나 대적을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선포는 대부분 죄와 믿음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듣는 이 모두가 회개를 해야만 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능력이 주어져야만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미가 선지자는 자신이 여호와의 신으로부터 세가지를 받아서
그 힘으로 사역을 한다고 말하고있습니다.

(1) 권능을 채움받아 사역을 한다고 선포합니다.

권능은 인간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들이 주의 종을 두려워 하는 것은
주의 종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 선포는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고
그 속에 있는 어두움을 밝히고 쫓아내게 만듭니다.
그 어두움이 질병이면 나음을 입을 것이요,
더러운 영이면 해방을 얻을 것이며,
죄악이면 회개를 할 것입니다.

구태여 제사장이 삯을 바라고 사역을 하지 않아도
은혜받은 사람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립니다.
여호와께 드려지는 예물이 없을 때, 주의 종의 사역은 직업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의 고용에서 사람들의 고용인으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주의 일을 하는 사역자가 제일 조심해야 될 부분이 물질입니다.
하늘의 공급을 의지하지 않고 일하면 권능히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2) 공의로 채움 받아 일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목적으로 신앙 생활할 시는 주로
내면적인 삶에 중심을 두게 됩니다. (기도, 말씀, 전도 등)
그러나 세상적인 삶을 주로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할 때
외면적인 삶에 치중하게 됩니다. (행사, 프로그램, 성공, 업적 등)

그러므로 종교적으로 가장 부패했던 중세시대 때,
교회건물이 가장 웅장하고 찬란했으며 ,
의상은 더욱 품위 있는 예복으로, 강단과 강대상은 높아지고, 
내면은 화려하게 꾸며지곤 하였던 것입니다.

공의란 일을 올바르게 처리한다는 뜻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내는 영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알고 지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죄가 많이 있을 때 이미 그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이
당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현대의 그리스도인의 모습들일 수 있습니다.


(3) 재능으로 채움 받아 일한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힘으로” 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담대함과 용기를 말합니다.

성령충만한 사역자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않고 중심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 수록 외모는 권세, 재력, 위엄, 품위 들로 포장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때 그 세력을 보면 말문이 막히게됩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 죄를 보게되면
성령님은 죄를 지적하게 만드시기 때문에 서슴없이 말할수 있습니다.
그 것이 담대함입니다. (예:나단선지자가 다윗왕이 밧세바를 취한 것을 꾸짖음).

미가 선지자의 이같은 담대함은 히스기야왕으로 하여금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2) 교회창설을 예언한 사역자 였습니다. (4:2-3)

하나님은 언제나 장래의 모습에 합당한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주님은 시몬을 베드로 '반석'이라 불러주셨고,
세리장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불리어지는 이름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처지를 개발하도록
자극을 주기 깨문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제 신앙의 공동체가
교회란 이름으로 탄생될 것과 그 역할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1) 교회는 가장 높은 곳에 굳게 세워질 것입니다.
 
[v.1]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서며
작은 산들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고 몰려갈 것이라."

이 세상에는 높은 곳이 많습니다. 빌딩도높고, 지위,제도, 세력, 문화, 과학…등
도시에 나가보면 온통 높은 것들의 경쟁이 집합되어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교회 건물은 낮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가장 높아질 수 있을까요?
죄악의 세력이 틈타지 못할 때, 영적인 건물이 되어 세상 건물보다
시공을 초월한 높임을 받습니다. 건물이 언제 든든합니까?
그 것은 기초가 튼튼할 때입니다. 어떤 건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한
기초'보다
더 튼튼한 기초로 세워진 건물은 없을 것입니다.

영생을 얻기위한 각 만족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거의다 '다민족 교회'입니다.
이 것을 미가 선지자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2) 교회에서 여호와의 말씁이 풍성히 선포될 것입니다 (4:2).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말씀의 선포와 배움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더 많이 알면 알 수록 그분을 더욱 영광되고
기쁘시게 해 드릴 수있습니다.       

구약의 성전은 예배중심의 처소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의 교회는 말씀중심의 처소가 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에 비하여 요즈음은
얼마나 많은 말씀을 듣고 배울 수 있습니까?
진리의 선포는 하늘나라를 계시하여 줄뿐아니라,
주님의 구원에 완성에 대하여 선명한 믿음을 갖게 해줍니다. (재림)

(3) 교회만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옵니다. (4:3)

[v.1]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나라와 저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아니하고…"


세상의 싸움은 인간이 노력으로는 해결 할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가 내분과 외적의 시달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살생의 무기가 쌓을 곳이 없도록
각 나라마다 저장해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가 무엇으로 이 위기를 막을 수 있습니까?
그 길은 하나님께서 다스려주시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교회의 역할에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불굴의 신앙을 가진 사역자였습니다. (7:8)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는 믿음이 자랄수록
문제도 점점 커진 것들이 다가오게 됩니다.

(1) 엎드러지는 경우입니다.

즉, 대적의 공격, 비방, 멸시, 핍박을 받는 경우입니다.
이 것은 주로 주변 경쟁자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가까운 자를 도구로삼아 쓰러 뜨리려는 경우입니다.

(2) 어두운데 앉아있는 경우입니다.

절망의 상태를 말합니다. 환경은 닫쳤습니다.
구원의 손길은 끊어졌습니다.
내몸의 기운도 소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낙심, 의심, 절망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표시입니다.
모든 시련과 환란은 그 목적과 의도를 지니고 있으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제한 적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온전히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다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상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시련속에서도 감사를 드릴 때,
가장 빛나게되고, 성도의 기쁨은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살 때,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미가는 서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크게쓰신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 비결이 오직 여호와만을 우러러 본데있습니다.
우리들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십시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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