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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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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기 은혜에 만족한

/ 수로보니게 여인
(A Canaanite woman of Tyre and Sidon.)

[마 15:28]




1. 인적사항


1) 가나안사람: 수로보니게 족속, 헬라인
2) 귀산 들린 딸을 둔 어머니
3) 이방인으로 기독교로 귀의한 여인
4) 그녀의 이름은 '유스타'이며 딸의 이름은 '베니게'
5)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이 큰 여인으로 인정받은 여인


2. 시대적 배경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고조되고 있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긴장을 느끼시고 유대인의 거주지와 헤롯의 관할권에서 벗어나
갈릴리 호수로부터 약 50-60 Km 떨어진 서북쪽 지역인
지중해 연안도시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는 옛날 가나안 땅에 살던 가나안 족속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옛날 수리아 영역 보니게 지역에
보니게인들 속에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수로보니게 인'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아프리카 사람들과 시리아인 혈통으로 갈라져 있는 가운데
이 여인은 시리아인 지역의 사람들에게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알신과 아스다롯 신을 숭배하는 이방인들로서
비옥한 골짜기와 지중해 연안 평원에 대단히 부요한
고대 문명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귀신들린 딸이 있었는데 이 귀신을 쫓아내려고 그 지역 우상들을
다 섬기면서 고침을 받기를 노력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하여 전해듣기 시작했습니다.
병자를 고치신 능력도, 오병이어를 베푸셔서 오천명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12 광주리나 남았다는 기적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하여 더욱 알아본 결과 다윗의 자손으로
올 메시야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자라났고 그 믿음은 우상숭배를 버리고
기독교로 귀의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자기가 사는 지역으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그녀는 주님을 뵙고 딸의
귀신들린 병을 고침 받을 각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주님을 쉽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람들을
예수님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먼 거리에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고
큰 소리를 질러 예수님께 호소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자기에게 다가올 줄을 알고 계셨습니다.
구세주이신 주님이 지니신 영혼은 구원을 받기 원하는
영혼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그 여인의 영혼이
예수님께 나아올 것을 이미 아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 여인이 주님께 나아오기를 허락받자 가까이나와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직접 아뢰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 여인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신성을 느끼게 되었고
입으로 나온 첫 말이 '주여 나를 도우소서!'란 말이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에서 '주님'(Lord)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주님은 이 여인이, 위대한 능력을 베푸는
한 인간에게 부탁하는 것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간구로 변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더욱 자라나게 하시기 원하셨습니다.
즉, 그녀의 간구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하셨습니다.

이 때, 이 소리를 들은 여인은 그 말씀이 자신을
도와 주신다는 확신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개라고 표현한 단어 - '퀴나리온'이라는 말은
경멸적인 들개나 사나운 개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집안에서 기르는 애완용의 강아지를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그 여인은 순간적으로 '오병이어 기적'에서
유대인들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무려
12 광주리나 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렇게 배불리 먹이시고도 부스러기를 열두 광주리나
남게 하신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레서 예수님께 부스러기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이 온전히 자라났음을 아시고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며
그녀의 딸을 말씀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이와같이 주님은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멀고도 먼
이방 땅, '두로'와 '시돈'지방까지 가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도 주님을 찾아야만 되는 믿음이 있다면
주님은 오늘도 땅끝까지 이르러 나를 찾아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의 믿음을 키우십시다.


3.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의 특징


1) 사랑이 많은 여인 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딸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침묵하심을 보고도 소리질러 도움을 요청한 것도,
주님이 이방인을 개로 표현하시면서 '떡을 줄 수 없다'
거절 하심을 받으면서도, 주님께 매달린 것은
병든 딸을 어찌하든 고치고 싶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즉, 이 여인은 딸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기고 살았던 것입니다.
결국 딸의 병을 고친 것은 그녀의 사랑이었습니다.

누구나 가정마다 환난이 있습니다.
가난, 질병, 재난…등 이같은 문제들을 풀기 위하여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해 봅니다. 그러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이 안되면 포기 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때에 포기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는 마음입니다.

나자신을 희생할 때, 남은 살아납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칙입니다.
때때로 신앙에는 자신을 버려야할 때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올바로 찾아가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희생의 대상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완성은 오직 주님을 위하여
자신을 포기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을 사랑함으로 자신을 희생하였지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자신을 희생하는 참다운 믿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2)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믿음이 모든 사람들애개 똑같이 귀중하지만
각자 지닌 믿음의 분량은 똑같지가 않습니다.
믿음의 분량은 예수님을 얼마큼 신뢰하고 있느냐에 따라
주님의 역사하심도 나에게 차등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 정작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나타내신 것은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적과 이사를 목격하였음에도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본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님을 봅니다.
'주님께서만이 나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마음'에서
믿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두 사람을 주님은 칭찬하셨는데
한 사람은 로마 백부장이며,
또 한 사람은 바로 오늘의 성경 인물인
'수로보니게 여인'입니다.  
   
그들은 둘다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들보다 믿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둘 중에서도 믿음이 더 큰 사람은 바로 수로보니게 여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사람 다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모든 질병이 고침을 받는다'
는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거주한 환경은 정반대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유대인들과 함께 살고 생활하였으며
회당을 지어주는 등, 상당히 주님의 역사하시는
환경에 속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이 여인은 전혀 다른 우상 숭배 지역에서
오직 자신의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또한 백부장의 하인은 중풍병 환자였지만,
이 여인의 딸은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혀 남에게 해를 주는
심각한 발작병 이었습니다.

병의 원인이 육신의 연약함에 있는 것과
사탄 마귀에 있는 것과는 치료에 대한 기대가 다릅니다.
즉, 약한 것은 강하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육신을 강하게 하는 것 외에
흉악한 세력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주님께 대한 믿음은
이미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지니신 분'으로
여긴 믿음이었습니다.

가능과 불가능한 사이에는 여러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가능 쪽으로 갈 수록 믿음은 커지지만,
불가능한 쪽으로 갈 수록 믿음은 적어집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커졌다 적어졌다 하는 믿음은
사실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입니다.
불가능한 것이든 가능한 것이든 변함없이 믿는 믿음이 생길 때,
바른 믿음을 소유한 것이 됩니다.


3) 인내의 여인이었습니다.

인내는 희망이 있을 때만 존재합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일찍 포기하게됩니다.
이 여인은 딸의 병고침의 소망을 오직 주님께 두고 산 사람입니다.

환경과 상황은 마치 밤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은 마치 태양 빛과 같은 대낮과 같습니다.
 "내가 절망의 밤에 속한 사람이냐?", 아니면
 "희망의 낮에 속한 사람이냐?"
내가 어느 것이든 바라보는 쪽에 달려있습니다.

믿음이란 낮이 밤을 없앤다는 생각이고,
포기란 밤이 낮을 이긴다는 생각입니다.
즉 환경이 환경을 지으신 하나님을 이긴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밤같은 절망 속에서도 낮이 올 것을 바라본 여인이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자신의 불가능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소망을 가진 여인었습니다.
드디어 이 소망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인내의 끝' - 즉, 결과는
그 소중함의 참 가치를 아는 사람이 마침내 지닐 수 있는 덕목입니다.
그리고 그 끝을 알려주는 계시가 말씀입니다.

반면에 포기란 끝을 절망으로 잘못 알고았는 사람의 불안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예비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결과가 좋던 나쁘던 모든 것이 결국엔 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지금의 형편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인내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것도,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사도바울이 죽음을 무릎쓰고 복음을 전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믿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내란 열매를 맺을 때, 참 인 것이 드러납니다.

지금 현재 인내의 한계에 직면해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망을 희망으로 바꾸십시요!
이 여인처럼 딸이 병에서 치료된다는 소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뀌어진 환경 속에서 내가 바라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 행복의 희망을 바라보십시요!

상황의 변화 단계를 벗어나 결과의 승리의 단계로 바로 뛰어 넘으십시요!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이 고침받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집에 돌아가 본 것은 건강한 모습의 딸이 달려나와
어머니를 맞이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완성의 결과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다같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적을 응답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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