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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 시므온 (Simeon)
[눅 2:25]


1. 인적사항


시므온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라는 의미 입니다.
그는 유명한 유대인 랍비 힐렐의 아들이요,
 가말리엘의 아버지요, 
A.D.13년에 산헤드린 회장이었습니다.

그는 일생을 메시야를 기다리다 성령의 계시로
 예수님을 처음 본자가 되었으며,
이에 감동하여 하나님께 메시야에 대한 찬송인
 '눈크디미티스' 를 올린 자가 되었습니다.


2. 시대적 배경


말라기 선자자 이후 40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에는
영감받은 선자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상황은
B.C. 1세기경 유다가 헬라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다시 로마의 식민지 통치 하에 들어감으로
정치적, 종교적으로 암울한 침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유대인들 사이에는 종말론적 메시야 대망사상이
크게 무르익게 되었으며 대부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적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정치적 으로 해방을 가져다줄
지도자로 서의 메시야상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럴 즈음에 소수의 경건란 신앙인들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의 상' 그대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할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시므온과 안나 여선지자 였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히 기도하며
성전 중심의 생활을 한 결과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가 죽기전에 메시야가 오는 것을 보리라 알려주셨습니다. (눅 2:26)

 그는 이 위로의 말씀을 붙들고 기다린 결과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처음 알아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 감사, 찬송 드리는 시므온의 고별송을 지었고
이 노래는 마리아의 찬송과, 사가랴의 찬송과 더불어
5세기 이후 저녁예배 용으로 많이 불리어졌으며,
또한 임종시에 찬송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는 유대역사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시므온은
 주님을 뵌 이후에도 훨씬 오랫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미 메시야를 보았은즉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음을
하나님께 고백드렸으나 하나님께서는
노후의 평안의 생활을 오랫동안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3. 신앙적 특징


1)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자였습니다. (눅 2:25)


사람이 의롭다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고,
경건 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성품을 나타낸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그는 '예언자의 영을 받은 자요'
더우기 메시야의 현세적 왕국에 대한 해방의 지도자로
유대인들이 품고 있었던 견해와는 달리,
영혼 구원의 메시야로써 그들과 반대되는 증언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위를 빼앗겼다고 합니다.
(메튜헨리 p.118)

이로 보아 사람이 의롭다 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을
기준으로 하는 의로움과 불의를 보고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한 믿음과 순종 여부에 따라 하는 행동에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경건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보이고 맡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예전, 독일에 '고틀리프'(하나님의 사랑이란 의미)이라는
늙은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지나가던 그리스도인이 사과를 줍고 있는 그를 보고
 '고틀리프씨 피곤하지  않으세요?'하고 인사를 하자
익은 사과를 건네주면서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아요. 나는 지금 단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오.
생각컨대 나는 이제 거의 다 익었어요.
머지않아 나도 땅에 떨어질거야.
그 땐 아마 하나님께서 날 주워 올리시곘지?'
(싸이클로 피티아 예화 중에서)

시므온은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성전에서 기다렸습니다.
죽음 보다도 더 소중한 메시야를 보기를 원하면서
소망을 기다리는 것과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것 모두 경건한 삶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메시야를 뵙기 위해서는
성결이 요구 되어진다는 점입니다.

율법에서 흠이 없는 자, 산앙에서도 흠이 없는 자,
성결한자,  결국 그는 신약에서 처음으로 성령강림 전에
성경의 충만함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2) 성령의 지시를 받은 자였습니다. (눅 2:26)


성령의 임재는 성결 위에 임하시고, 성령의 충만하심은
믿음위에 예언의 영으로 시므온에게 임하셨습니다.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전에 죽지 아니하니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구약의 말기 400년간의 성령님의 침묵 가운데
시므온에게 임하셨음은 그의 성결과 믿음이 얼마나
좋았는 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므온에게 있어서의 삶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기간이자,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때이며,
죽음이란 평안으로 맞이하는 하늘의 부르심으로 여긴 삶이였습니다.

그에게 남은 인생의 한가지 하나님의 뜻은
메시야를 보도록 허락하신 축복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오르시는
그 시간에 시므온을 감동시켜 미주치게 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으나 그들은 생후
몇주 지난 어린 아기와 가난하고 미천한 부부가
성전으로 들어오는 것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의 영의 눈에는 아기 예수님이 바로 구세주시요,
이스라엘의 위로자이심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사람의 눈이란 생각 속에  있는 것만 현실에서
찿아내어 볼수있게 되어 있습니다.
시므온의 마음 속은 오직 메시야만을 그리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찾는 성도들도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전에 들어올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의 눈과 귀가 열려 주님의 임재하심을 체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므온은 신앙생활이란 성전 생활이며 예배란 전적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예배임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메시야에 대한 예언 찬송을 부른 자였습니다. (눅 2:29-32)


구원이란 즉 주님을 보는 것임을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체험 모두를 구원으로 여기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4) 구원은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그는 알았습니다. (눅:31)


'만민 앞에 예비된 것'이란 인간 종교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길임을 예견한 말입니다.
또한 구원의 역사를 두 가지로 나타내었는데, 
이방인에게는 빛의 역할로,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으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이는 주님을 모르고 사는 이방인들은
무지와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는 구원으로 표시한 것이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지만
천대와 멸시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야의 탄생으로 인한 영광의 회복이
이루어 질 것이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시므온의 메시야의 찬송은
마리아의 찬송과 사가랴의 찬송과 더불어
이름다운 찬송의 하나로 5세기 이후
 저녁예배시 찬송으로 불리었으며
또한 임종시의 찬송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누가복음 주해 이상근 박사)

노년이란 오랫동안 산 삶에서 오는 것이기 보다는,
신앙 속에서 산 삶에서 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인생의 열매는 육신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의 신앙의 열매를 보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신앙 속에서 열매를 맺는 삶으로
좀 더 변화되어 져야겠다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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