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뉴질랜드 에바다교회




아리마대 요셉
/ Joseph of Arimathea
[눅 23:50]



1. 인적사항


70 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위원
공회의 결의와 행사에 가담하지 아니한 선하고 의로운 자
사무렐의 출생지인 라마다임 출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린 사므온과 안나 선지자 같은 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요구한 자
주님을 자신의 묘실에 모실만큼 부자인 자
예수님의 숨은 제자 (마 27:57)
니고데모와 함께 향품과 향료로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한 자 (요 19:39)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 장례식 행사 때 의외에는
성경에서 그에 대하여 언급되어져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주님의 숨은 제자로서 매우 가치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후대의 성도들은 그를 흠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 관한 미흡한 언급을 대신하여
전해 내려오는 전설로 많은 사람들이 위로 받기도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주후 61년에 빌립에 의해서
영국으로 파송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글래스턴버리 (Glastonbury)로 왔고 그 때에
그는 최후 만찬때에 사용되었던 잔을 가지고 왔는데
그 안에 그리스도의 피가 들어있었다 합니다.
이 잔이 성배가 되었으며 아더왕의 기사들은
그것을 찾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요셉이 글래스턴버리에 이르렀을 때는 그는 피로에 지쳐
지팡이에 의지하여 쉬려고 지팡이를 땅이 깊이 박았는데
그 지팡이에 싹이 나서 해마다 크리스마스 날이면
꽃을 피우는 숲이 되었다 합니다.

성 요셉의 숲은 아직도 글래스텐베리에서 꽃피고 있으며
오늘까지도 그 점지를 온 세상에 내보내고 있다 합니다.
영국 최초의 교회는 글래스텐베리에 세워졌고 대 수도원과
고대 건물에는 성요셉 예배당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곳은 순례자들이 즐기는 순례지이자
휴양지가 되고있다고 합니다.
(바클레이 주석 씨리즈 눅 p. 404 참조)


2. 신앙의 특징


1)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산 자였습니다. (눅 23:51)

예루살렘의 공회는 70명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그 중 24명은 제사장들의 대표자들로
24명은 이스라엘 국민들을 대표하는 장로들로
나머지 22명은 율법을 배운 세기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공회의 기원은 광야에서 모세를 도와주었던
 70인 장로들을 본받아 이루어졌다고하며
그들의 권한은 예루살렘의 시정, 종교적 가르침,
치안의 확립,  성전 내의 각종 업무 집행들을 수반하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당시 국민의 대표 중 한 사람의 장로로써
공회에서 일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와같은 정치, 종교의 지도자역에 가담하면서
그는 시므온과 안나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며 지내던 중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약속된 구세주가 바로 예수님임을 믿게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와 시므온과 안나 선지자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의 공동특징을 보게됩니다.
그것은 바로 선하고 의로운 성품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눅 2:25, 23:50)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우리들에게 행한대로 보응하리라 하셨습니다. (롬 2:6)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의 위로를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재산, 권위, 명예, 권세, 소유, 치리 등에 중심을 둔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것을 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신앙생활은 하나님 나라를 염두에 둔
참된 믿음의 생활은 아님을 요셉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란 본래 재판자리에서 필요한 것으로서
의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재판자리에 서 있다는
인식을 항상 갖고 바르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즉, 의란 선행과 일치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를 위해  신원하며 과부를 위해 변호하고 (사 1:17)
공평을 지키는 것임을 (사 56:!)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예수님을 처형할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그는 아에 처음부터 그 같은 불법적인 모임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결정은
만장일치였기 때문입니다. (막 14:64)
그의 이와같은 행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사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빌라도에게 주님의 시신을 요구한 담대한 신앙을 가진 자였습니다. (눅 23:52)


성경에서 요셉과 니고데모를 주님의 숨은 제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 27:57)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지만 자신들의 소속과 사역속에서는
떳떳히 제자의 신분을 노출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산헤드린 공회원이란 신분과 지위는, 그들로 자격을 박탈당해야만 하는
주님의 제자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못하는 처지에 있게 하였으며

[2] 유대교사회에서의 축출과 재산의 몰수 등은 큰 위험임으로
숨은 제자로서의 신앙인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재판받는  자리에서와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담대한 믿음과 순종을 보고 그들의 마음은 강하게
믿음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특이한 사건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1] 주님꼐서 돌아가시자 성전의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으며
무덤들이 열리고 죽은 성도들이 다시 살아났으며
부활의 몸으로 돌아다니는 역사가 일어난 사건 (마 27:51-52)

[2]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강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나타내는 표현을 어느 누구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옆에 달린 강도가 고백했습니다.


[눅 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찮은 죄인인 도둑만이 예수님을 구주로 외치고 있는데
자신은 정작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자로서
자신의 신분을 더 이상 감추고 있는 것이 신앙 양심에
어긋나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현실 위주의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천국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깨닫고 담대하게 처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주님의 시신을 요구하였습니다.
이 같은 행동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자세일 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려놓은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보인 행동이었습니다.


세상 속에서의 삶은 신앙행활에 많은 걸림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왜나하면 나에게 주어진 모든 형편은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어진 것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맡기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란 주인공의 인식이 주님이라는 중심의 삶으로
바뀌는 것이  참된 신앙임을 요셉은 보여준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시신을 자신의 무덤에 안치하여 장사지낸 자입니다. (눅 23:52)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다음에 12 제자들과 같이
주님 곁에서 많은 말씀을 듣지 못하는 대신 주님에 대한
구약의 말씀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에 대하여 늘 자신의 정원을 거닐면서 묵상을 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마음에 와닿는 한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 53:9] "그는 강포를 행치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이 말씀 가운데 과연 그 부자란 누구일까요?
그 말씀은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으며 마침내 그는
자신이 장본인이 되어야 함을 점점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돌아가시자 지체하지 않고 빌라도 총독에게
달려가 주님의 시신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제자들도,  평소에 은혜를 많이 받았던
  장본인들도 없었습니다.
오직 같은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가지고 온 백근에 해당되는
몰약과 침향으로 주님의 몸을 닦고 세마포에 싸서
둘이서 주님의 장례를 치룬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위하여 마련해 둔 돌무덤에 시신을 안치하였습니다.
신앙에는 시작시점과, 성장 시점과, 완성시점이 누구나 다 다릅니다.

먼저 시작한 신앙인에게도 자신의 할 사명이 주어져 있고 나타난
제자된 사람들도 해야할 때가 있는 반면 늦게 부르심 받은 사람도,
숨어있는 제자의 삶을 산 사람도 주님의 떄가 되면
할 일들이 주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순종하려는 자세로
말씀을 늘 묵상하며 깨달음을 갖는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마지막 주님을
온전히 모신 것도 구약을 늘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을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믿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 중에 사명적인 삶은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하고
의미를 깨닫도록 노력할 때 성령님의 계시하심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성령님꼐서 임하셔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계시를 주셨듯이
아리마대 요셉에게도 성령님께서 주님의 마지막 장례에 대하여
계시히여 주셨을 것입니다.

그는 숨은 제자로서의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지만 나중에는
정식 제자들보다도 더 큰일을 해낸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그의 신앙을 본받아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마지막 떄에
감당하는 성도들이 다 같이 되십시다.










1 ··· 4 5 6 7 8 9 10 11 12 ··· 92 
BLOG main image
뉴질랜드 에바다교회
뉴질랜드 에바다교회입니다

카테고리

Menu
Notice
교회소식
주일설교
Christian Life
Bible Study
Media
Life
Resource
Sch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