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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교법사 가말리엘
/ Gamaliel

[행 5:34]


1. 인적 사항

가말리엘이란 히브리 원어는 '가물리엘'로 그 의미는
"하나님은 나의 보답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민 1:10]
그는 유대인들의 율법과 유전을 연구히고
체계화하는 율법학자인 교법사였습니다. [행 5:34]

산헤드린 공회에 바리새파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위대한 랍비 '힐렐'의 손자이며 힐렐학파 의 계승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기다리다 예수님을
품에 안았던 '시므온'의 아들입니다.[눅 2:25]

그는 '랍비'(선생)라고 칭해지기보다 훨씬 영광의 호칭인
"랍반"(우리들의 큰 선생)으로 불리워진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수제자 사도바울의 스승이기도합니다. [행 22:3]


2. 그의 생애


가말리엘의 가문은 유대교의 보수파인 "샴마이" 학파와
쌍벽을 이루었던 온건파인 '힐렐'학파의 원조였던 '힐렐'이 조부였으며,
그의 부친은 또한 예수님께서 아기로 성전에 드리어졌을 때,
'그리스도를 보기 전엔 죽지 않겠다'
시므온이 부친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하였던 그는
조부가 세운 힐렐학파의 계승자가 되었고 랍비가 되었으며
랍비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랍비에게 주어진
7명의 랍반중 한 사람으로 불리어졌습니다.

또한 그의 부친 시므온과 조부 힐렐에 뒤를 이어
랍반의 호칭을 받은 가말리엘은 3대째 랍반 가문의 후예로서
그는 평생에 문하생을 천여명이나 배출을 하였습니다.
그들 중 5백명은 율법사로, 나머지 5백명은 희랍의 지혜를
공부하는 제자들이었다고 합니다.  (탈무드)

이중에는 수제자로 '사도 바울'이 있으며, 또한 전승에 의하면  
'스테반' '바나바'도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이었다고합니다.

그는 성전에서 가르치기를 좋아해서, 주님이 어렸을 당시
부모와 더불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성전에 남아 랍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시기에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선생들 중 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눅 2:46]
또한 바로 그 때에 예수님에 대하여 특별한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주님의 기적을 일으카는 사역을 통하여
그는 점점 그 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니고데모와 아리마데 요셉과 더불어
주님의 숨은 제자로 전승에는 전해지고 있습니다.

더우기 그의 온전하고 관대한 성품은
산헤드린의 극단적인 분위기에 말려들지 않고
오히려 그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이미 그는 주님의 도를 따르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만년에 그의 아들 아힙과
니고데모와 함께 베드로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바리새인으로서의 바른 행실과 그의 높은 학문,
온화하고 관대한 성품은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살았으며,
그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라반 가말리엘이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율법에 대한 존경도 없어졌고 순수성과 금욕도 가버렸도다.
"
라고 하며 많이들 아쉬워 하였답니다.

그의 제자이며 개종자인 탈꿈학자 '몽켈로스'는 그를 추모하면서
두로돈으로 70미네의 향료를 제공하였으며
위대한 위인의 장례절차에 따라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나타나지 않은 그리스도의 제자였으나
말년의 세례는 그로 평안히 구원받은 기쁨으로 임종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기전 (A.D. 70) 18 년 전에 죽었으며,

그의 죽음에 대하여 '미쉬나'에 기록되었으되
"그의 죽음으로 토라에 관한 경의도 끝났고 순결과 절제도
그와 함께 묻혔다."라고 표현되어있다 합니다.


3. 그의 신앙의 특징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메모는 공회에서 주님을 잡으려는
쟁론이 한창일 때, 말하기를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전에 판결하느냐?"[요 7:51] 함으로
그들의 행위를 은근히 저지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이미 예수님을 따르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말리엘도 마찬가지로 공회에서 사도들을 붙잡아
처형하고자 했을 때, 그 일에 대하여 과거 행해진
'드다'와 '유다'의 사건을 예를 들어, 또한 공회의 결정을
저지한데에는 이미 그의 마음 속에
주님을 따르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가멜리엘은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려는 신앙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은 운명과 자유 의지를
한데 묶은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하면서도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것이 예비되어져 있으나 인간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다." 라고 믿었습니다.
(바클레이 주석 참조)

이같은 그들의 신앙태도는 오히려 정치적, 종교적,
기득권을 옹호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보다
현실적인 위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살게 만들었으며
주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을 오히려 바알세블에 힘입어
행한 귀신의 역사라고 왜곡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같은 마음과 생각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지위 및
신분 유지 로서의 신앙을 필요로 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준 반면에,

가말리엘은 그의 직분과 직책은 이미 온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랍반의 위치 인데다가,
그가 이미 주님의 행하신 기적과 말씀으로
참 신앙의 길을 찾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실에 대하여 주의와 경고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즉, "너희들의 자유 의지와 행실은 생활면에서는 허락될지라도
신앙면에서는 허용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뜻을 지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일을 막는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됨을
알아야한다." 고 엄히 나무랐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같은 신앙에 있으면서도 타교단과
이웃 교회에 역사가 일어나는데 대하여
비판과 정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단에 대한 경고는 바람직하지만, 기적과 이사는
교리에 의해 해석되기 어려운 부분들임을 감안할 때,
기도하며 성령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 지를
기다리며 주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말리엘은 신앙의 변화에 대하여 신중하였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좀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신앙도, 인격과 지식과 덕망이 배양되어
있을 때 더욱 존경받는 신앙인이 됨을 배울 수 있습니다.


2) 가말리엘의 신앙은 현상보다도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를 근거로한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들이  현실에 당면한 문제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셨던 일과 인도하셨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현실을 이해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가말리엘은 많은 학문과 지식 못지않게 신앙 안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도 면밀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드다'라는 사람과 '유다'라는 자가 사람들을 미혹하고
난을 일으켰을 때에 장본인을 잡아 처형하자 그를 뒤쫓았던
무리들이 저절로 해체되었던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소행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난 것이면
바로왕이 아무리 방해를 해도 결국은
자신에게 불행만 주어졌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세가 죽었어도 여호수아를 통하여
모두 이루어졌음을 보고, 기득권의 치리를
옹호하려는 무리들의 감정적이고 선동적인
동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주제를 주입시켜
흥분을 가라앉힌 것입니다.

왜 그들은 모두 가말리엘의 주장을
반대하지않고 순순히 따랐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한 말 중
"너희들이 하나님의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v.39]
라고한 그의 결정적인 일침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의 기적과
이사와 부활하심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일종의 죄 의식과 불안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가말리엘은 그 같은 그들의 정곡을 찌른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 지금이 아나라.
예전에 주님을 죽였을 때, 이미 저지른 죄를 알고
더 이상 하지 말라."라는 의도를 지난 말이었습니다.  

거짓 무리들은 이익을 중심으로 할 땐 함께 모여듭니다.
그러나 불리한 결과가 초래할 땐, 서로가 등을 돌리고 맙니다.
가말리엘은 그들과 함께 더 이상 동조하지 않고
살다가 (A.D. 52)년 경에 일생을 마감하였습니다


3) 가말리엘의 신앙은 주님의 말씀을 숨어서 지키는 살이었습니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 말씀은 공회 의원들일지라도 주님의 재자가
많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가말리엘이었습니다.

그 이유로서 그는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이었으며
제자들의 기적과 기사는 확실히 하나님께로서
기인한 것이며, 학문 없는 그들이 구약을 인용하며
대제사장들에게 변론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기전에 제자였던 사도바울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대한 그의 간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기 위하여
아들과 더불어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바울도 사도였으나 제자로 부터 세례를 받기보다는
주님의 정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받는 것이
더 이치적이었을 것입니다.

이와같은 내용과, 제사장들 중 주님께로 향한
허다한 수의 사람들의 아름은 가리어져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고 숨은 제자들로 살았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말리엘이 보여주는것은, 진리는 지식보다 앞서며,
신분과 지위도 주님의 종들인 사도보다 결코 높을 수 없으며,
백성들에게 받는 존경과 인정도 주님으로 부터 받는 인정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겸손입니다.
참된 신앙은 드러내 보이는 것보다 주님과의 내면의 관계가
더 깊고 중요한 부분을 조용히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요즈음은 보기 드믄 일들이라 여겨집니다.
이 시대에 모두 요구되어지는 것도 드러내지않고
숨은 제자로서의 진리를 따르는 진실된 모습일 것입니다.

그의 부친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아보고 눈을 감았지만,
가말리엘은 성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마음에 모시고 눈을 감았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의인을 옳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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