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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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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 / Remnant
[9:27-28]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대상은 모든 인간들이지만
그 구원 사역의 전개는 스스로 선택하신
소수의 무리들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를 '남은 자 사상'이라고 말하며 첫번 째 이 사건이 드러난 경우는
인류를 홍수로 멸하실 때, 남겨 놓으신 노아와 그의 가족들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어서 백성들이 다시 이 땅에 번성하자,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지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원 사역이 본격적인 전개에 이르러 선택의 범위를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 시키지 아니 하시고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한
영적 이스라엘 백성으로 확대하셨습니다.

결국 남은 자들이란 구원 사역의 끈을 이어가는
시대의 고리들로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성시키며
하늘 나라에 가서는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기업을 유업으로 얻을 자들을 의미합니다. [계 21:7]


1. '남은 자 사상'이란 무엇인가?
 

남은 자를 통한 구원사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 7:23] "모든 호흡하는 생물들은 다 홍수로 죽고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하신 말씀으로 시작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사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스알야숩"이라고
부르게 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사 7:3, 8:18]

왜냐하면 그 이름의 뜻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은 자란 단어의 구체적인 뜻은 무엇일까요?
 


[1] 남은 자란 어떠한 심판에도 구원 받고 남아 있는 축복된 무리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1)'솨알': 총 276회나 쓰여졌으며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남겨있다"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멸망 받지 않고 남겨져 보존 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2)'팔랏': 총 80회 사용되었고 그 기본의 의미는 '구출하다"란 뜻이며
'남은 자란 극도의 심판의 혼란에서 꺼내져 구출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3)'말랏': 총 89회 쓰여졌으며 그 기본 의미는
'도피하다, 안전을 구하다"
  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한 집단 전체가 멸망되는, 인간의 힘으로는 살아날 수 없는 위기에서
안전하게 도피하여 생명을 건지게된 사람들'
을 의미 합니다.
 

(4) '야탈': 총 110여회 사용되었습니다.
그 기본 의미는 '님기다, 잔류하다" 란 뜻으로 '멸망의 위기에서
생존한 자들에게는 주어진 약속의 축복가운데
머므르는 사람들'
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말들을 종합적으로 요약해 보면
"어떠한 위기와 심판에서도 멸망 받지 않고 구출받아
남아있는 축복된 무리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랜드 주석 이사야 10장 연구자료 참조)


[2] 남은 자란 주의 말씀을 이 땅에서 이루고 마치는 일을 할 사람들을 말합니다. 

 

[롬 9:27-28]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게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필하다'란 헬라어 '순텔레오'란 단어로
'완성하다'성취하다'라는 의미이고
'끝내시리라'란 단어는 '순템노'인데 그 뜻은
'단축하다, 잘라내다'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계획하신 것은 신속히 성취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일에 택함 받은 사람들이 시대별로 '남은 자'들입니다.


1) 남은 자들은 씨의 역할을 합니다. 


이사야는 남은 자들을 '거룩한 씨'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사6:13]
 
씨란 미래의 추수를 위하여 뿌려지는 씨앗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로 씨를 뿌리실 때,
씨는 많은 열매를 맺어야 그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 의해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심은 씨앗인 그의 자녀 이삭은 430년이 지난 후,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오늘날 남은 자인 우리들도 믿음의 아브라함이 되어
나의 씨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 200만이 넘는 역할을
감당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는 이삭을 드렸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는 사람들만이 맺을 수 있는 추수입니다.
 


2) 남은 자들을 예수님을 증거하는 역할울 합니다. 


[께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게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구약에서 남은 자의 특징을 믿음을 지닌 자로 표현한다면,
신약에서는 주님을 증거하는 자가 남은 자의 특징이 됩니다.
 
 
요즈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원과 축복 받는 일에
주로 목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주님의 명령이자
사명을 잊어버린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분은 예수님 증거와 제자 삼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의 초청과, 택함 받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에 참석한 것은 청함받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는 반면,
천국가는 것은 택함 받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하신 말씀도 '남은 자'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증거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도움만을
도구로 사용하려는 신앙이 되어 택함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의 특징은 영적 전투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신만의 안일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의 유혹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는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여러 방면으로 공격을 해 옵니다.
특히 환경을 어렵게 만듭니다.

오늘날 남은 자의 자세는 환경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자세를 지녀야합니다.
성령님이 마음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2. 누가 남은 자로 선택될까요?
 

[1]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자가 남은 자로 선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명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 한 자니라."
 

 

그 당시 아합왕과 이세벨은 '바알'을 우상으로 섬겼음으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면 고통을 당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여호와를 섬겼다는 것은 충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켜 나가야할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을 위하여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 중에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자신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참 믿음이 들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생명은
어차피 버려져야하는 생명이고 영혼의 영생이 참 생명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포기의 계기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바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의 특징이며
오늘날은 주님의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성령세례 체험을 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가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롬 11:5] "그런즉 이와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똑같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출애굽을 시키셨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백성을 삼으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택함을 받아 들어간 사람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이는 은혜받은 것에서 택함을 받는 사이에는 반드시 은혜 받은 것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함을 의미합니다.

즉 받은 은혜를 육신적으로만 만족 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달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감사하고
따르는 행위가 있어야함을 말합니다.

대부분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의 삶의 축복 여부에만 국한 시키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믿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적과 이사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신을 더욱 사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40년 광야 생활을 믿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느낄 때 마다 항상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믿음보다 더 커야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사랑의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삶이 하나님 선택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남은 자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는 세상에 사랑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신, 돈, 권력, 자녀, 컴퓨터…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앞선 것은 선택의 조건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합니다.
 

한국 성도들은 이 시대에 남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점점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갔던 길을
가고 있음을 봅니다. 주변에 우상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버리실 수 있습니다.

천국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안주하려는
기복 신앙을 떨쳐버리고 한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주님을 증거하는 참된 남은 자들이 다같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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