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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1
/재미있는 성경상식2
[누가복음 15장]





/ By Esther





잃은 아들 (11-32)
'잃어버린 죄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란 주제의 마지막 비유



‘돌아온 탕자’로 잘 알려진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땐
다른 무엇보다도 예의 없고, 철 없는 이로 각인되었던 아들이었습니다.


 혼전까지 부모의 보호 아래 있는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는 본다면 불효 막심! 이겠지만
 이스라엘, 특히 예수님 시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집니다.



이 시대 아버지는 생전 자식들에게 적당한 재산을 선물로 주곤 했으며,
맏아들일 경우 다른 아들들의 두 배를 받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신 21:17)



특히, 재산 상속은 아버지 임종이 임박할 때 행해졌으므로
 둘째 아들은 형 몫 이외 나머지인 1/3을 요구했을 것이고
이 것은 이스라엘의 관례와 예의에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문화는 신용과 믿음이 바탕으로 되어있어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기 시작하면 그 곳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집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인의 관계에서나
'죄의 유무를 가려 공식적으로 돌로 쳐 죽이는 법'을 보면 잘 나타나듯
사람들의 죄인에 대한 반응이 너그럽지 않으며
한번 죄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은 그 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게 됩니다.



그럼, 돌아오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목을 안아 입을 맞춤이란 노예가 아닌 동등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제일 좋은 옷은 명예로운 손님에게 주는 그 집의 가장 귀한 예복이며,
반지는 아들의 권위 회복을,
신발은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신분 회복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달려가’란 대목입니다.



성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긴 예복을 보면
속옷이야 어찌되었든 보통 겉으로는 길게 늘어진 원통 옷이 대부분으로
건조한 땅을 먼지 나게 뛰어다니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며
(걸리적 거리는 옷을 양손으로 살짝 집어 달릴 수도 있겠고)
어른이 되어 옷을 발목위로 걷어 올려 뛰어다닌다는 것은
팔레스틴 사회에선 굉장히 품위 없는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탕자 아버지처럼 연로하신 분이 뛰어다닌다는 것은
더욱 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말이죠.



이처럼 사회적 지위가 있음에도 달려가 아들을 맞이함엔 많은 의미가 담겨져있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아들을 만나기 위한 것이며



둘째, 입을 맞춤으로써 아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의 신분을 인정한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 사회로 볼 때 이 아들은 분명히 손가락질 받을 것이므로
아들이 다른 이들에게로부터 죄인 취급 당하기 전
(앞서 설명했듯이 죄인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즉, ‘아들을 치려면 나를 먼저 거쳐라’ 란 뜻이 포함 된 행동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회개하는 자들을 향해 먼저 발견하시고
 달려가 죄를 용서해 주시며 (시 34:18;51:17; 사 66:2),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로서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롬 8:15)




2009/02/24

/ By 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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