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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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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 / Remnant
[9:27-28]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대상은 모든 인간들이지만
그 구원 사역의 전개는 스스로 선택하신
소수의 무리들을 통하여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를 '남은 자 사상'이라고 말하며 첫번 째 이 사건이 드러난 경우는
인류를 홍수로 멸하실 때, 남겨 놓으신 노아와 그의 가족들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어서 백성들이 다시 이 땅에 번성하자,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지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원 사역이 본격적인 전개에 이르러 선택의 범위를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 시키지 아니 하시고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한
영적 이스라엘 백성으로 확대하셨습니다.

결국 남은 자들이란 구원 사역의 끈을 이어가는
시대의 고리들로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성시키며
하늘 나라에 가서는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기업을 유업으로 얻을 자들을 의미합니다. [계 21:7]


1. '남은 자 사상'이란 무엇인가?
 

남은 자를 통한 구원사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 7:23] "모든 호흡하는 생물들은 다 홍수로 죽고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하신 말씀으로 시작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사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스알야숩"이라고
부르게 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사 7:3, 8:18]

왜냐하면 그 이름의 뜻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은 자란 단어의 구체적인 뜻은 무엇일까요?
 


[1] 남은 자란 어떠한 심판에도 구원 받고 남아 있는 축복된 무리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1)'솨알': 총 276회나 쓰여졌으며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남겨있다"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멸망 받지 않고 남겨져 보존 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2)'팔랏': 총 80회 사용되었고 그 기본의 의미는 '구출하다"란 뜻이며
'남은 자란 극도의 심판의 혼란에서 꺼내져 구출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3)'말랏': 총 89회 쓰여졌으며 그 기본 의미는
'도피하다, 안전을 구하다"
  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한 집단 전체가 멸망되는, 인간의 힘으로는 살아날 수 없는 위기에서
안전하게 도피하여 생명을 건지게된 사람들'
을 의미 합니다.
 

(4) '야탈': 총 110여회 사용되었습니다.
그 기본 의미는 '님기다, 잔류하다" 란 뜻으로 '멸망의 위기에서
생존한 자들에게는 주어진 약속의 축복가운데
머므르는 사람들'
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말들을 종합적으로 요약해 보면
"어떠한 위기와 심판에서도 멸망 받지 않고 구출받아
남아있는 축복된 무리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랜드 주석 이사야 10장 연구자료 참조)


[2] 남은 자란 주의 말씀을 이 땅에서 이루고 마치는 일을 할 사람들을 말합니다. 

 

[롬 9:27-28]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게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필하다'란 헬라어 '순텔레오'란 단어로
'완성하다'성취하다'라는 의미이고
'끝내시리라'란 단어는 '순템노'인데 그 뜻은
'단축하다, 잘라내다'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계획하신 것은 신속히 성취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일에 택함 받은 사람들이 시대별로 '남은 자'들입니다.


1) 남은 자들은 씨의 역할을 합니다. 


이사야는 남은 자들을 '거룩한 씨'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사6:13]
 
씨란 미래의 추수를 위하여 뿌려지는 씨앗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로 씨를 뿌리실 때,
씨는 많은 열매를 맺어야 그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 의해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심은 씨앗인 그의 자녀 이삭은 430년이 지난 후,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오늘날 남은 자인 우리들도 믿음의 아브라함이 되어
나의 씨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 200만이 넘는 역할을
감당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는 이삭을 드렸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는 사람들만이 맺을 수 있는 추수입니다.
 


2) 남은 자들을 예수님을 증거하는 역할울 합니다. 


[께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게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구약에서 남은 자의 특징을 믿음을 지닌 자로 표현한다면,
신약에서는 주님을 증거하는 자가 남은 자의 특징이 됩니다.
 
 
요즈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원과 축복 받는 일에
주로 목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주님의 명령이자
사명을 잊어버린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분은 예수님 증거와 제자 삼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의 초청과, 택함 받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에 참석한 것은 청함받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는 반면,
천국가는 것은 택함 받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하신 말씀도 '남은 자'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증거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도움만을
도구로 사용하려는 신앙이 되어 택함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의 특징은 영적 전투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신만의 안일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의 유혹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는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여러 방면으로 공격을 해 옵니다.
특히 환경을 어렵게 만듭니다.

오늘날 남은 자의 자세는 환경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자세를 지녀야합니다.
성령님이 마음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2. 누가 남은 자로 선택될까요?
 

[1] 우상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자가 남은 자로 선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명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 한 자니라."
 

 

그 당시 아합왕과 이세벨은 '바알'을 우상으로 섬겼음으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면 고통을 당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여호와를 섬겼다는 것은 충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켜 나가야할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을 위하여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 중에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자신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참 믿음이 들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생명은
어차피 버려져야하는 생명이고 영혼의 영생이 참 생명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포기의 계기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바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의 특징이며
오늘날은 주님의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성령세례 체험을 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가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롬 11:5] "그런즉 이와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똑같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출애굽을 시키셨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백성을 삼으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택함을 받아 들어간 사람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이는 은혜받은 것에서 택함을 받는 사이에는 반드시 은혜 받은 것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함을 의미합니다.

즉 받은 은혜를 육신적으로만 만족 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달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감사하고
따르는 행위가 있어야함을 말합니다.

대부분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의 삶의 축복 여부에만 국한 시키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믿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적과 이사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신을 더욱 사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40년 광야 생활을 믿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느낄 때 마다 항상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믿음보다 더 커야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사랑의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삶이 하나님 선택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남은 자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는 세상에 사랑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신, 돈, 권력, 자녀, 컴퓨터…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앞선 것은 선택의 조건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합니다.
 

한국 성도들은 이 시대에 남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점점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갔던 길을
가고 있음을 봅니다. 주변에 우상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버리실 수 있습니다.

천국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안주하려는
기복 신앙을 떨쳐버리고 한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주님을 증거하는 참된 남은 자들이 다같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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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칭의

[롬 3:24]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가까운 분은 하나닙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선 만 알때,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를 먹음으로 선의 세계에서
악의 세계로 빠져버리게 되었습니다.

악의 세계는 선의 세계와는 반대로 불행이 가득한 삶입니다.
이로서 인간은 이중적인 인격의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죄악을 제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 것은
악의 속성이 온 몸과 마음 속에 혼합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악을 경험하는 것은 선을 더욱 올바로 알수 있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천사와 다른 것은 선악을 모두 안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죽음으로 제한을 두신 것은
악의 경험을 제한적으로 허락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타락은 나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타락을 청산하면
더욱 타락과는 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이 진정 죄를 싫어하고
타락한 생활을 벗어나 더욱 선한 삶을 살려는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올바른 구원의 첫 시작이 '이신칭의' 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1. 이신칭의란 무엇인가?


'이신칭의'란 믿음으로 인해 의롭게 여겨짐을 받았다는 의미로
의인의 신분을 얻음으로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죄성을 지닌 인간은 죄를 떠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상태에서 살게되었습니다.
즉 죄를 짓지않아도 죄의 근원에서는 죄된 생각과 마음을 계속 갖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안지어도 죄의 마음은 심판으로 다스리십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에 의하여 아무리
하나님께 다시 다가가고 싶어도 결국 마음뿐이지
다가가면 심판받아 죽게 되어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되어진 의로 보시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기때문에 인간 모두를 책임질 수 있으시고,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모든 죄를 다 떠맡으실 수 있으시며
율법을 다 지키신 분이시기 때문에 충분한 의인의 자격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주님을 우리 죄대신 심판받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시키셔서 대속의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보실 때,
죄인이 아니라 주님의 죄 없으신 상태로 율법을 다 지킨
의인으로 바라보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죄를 사함받은 것도 용서함 받은 것도 아닌 죄 자체가 없어진
선 만을 지닌 옛 아담같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

칭의란 죄사함과 용서함과는 다른 말입니다.
죄를 사하여 주었다는 것은 죄지은 것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벌주는 것은 용서해준다는 것을 의미압니다.
즉, 벌 받아야 할 근거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칭의는 벌을 받을 모든 것을 없앨뿐아니라 벌을 줄 수 있는
근거를 아예 없애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분명히 죄를 지은 죄인인데
의인으로 쥐급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칭의의 상태란
어떤 상태인지를 세가지 예를들어 설명하고 았습니다.


1] 법정에서 무죄로 판결을 받은 상태의 경우입니다.

헬라어로 '의로 여기다' 란 단어는 '디아키운'입니다.
'의인으로 취급하고 인정한다'란 의미입니다.

인간이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을시 무죄로 판명이되면 자유인이 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법정에 재판을 받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가 없는 의인으로의 판결을 내려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2] 제사에서 제물을 드림으로 먼저 상태가 없어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부자간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하나님 앞에 법죄함으로
원수간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사를 통해 제물을 대신 죄의 댓가로 심판하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물로서의 제물은 그가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자격까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제물이 되시어 드려짐으로
우리는 죄가 없는 주님의 아들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이 완전히 소멸됬음으로 완전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힐라스테리온]


3] 노예제도 에서의 완전 해방을 받은 상태를 말합니다.

속량이란 단어 '아플루트르시스'란 헬라어는 댓가를 치룸으로
완전히 그 상태에서 지불되어 자유롭게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죄값을 완전히 치루었으므로 모든 죄와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난 자유인이 된 우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로 부터는는 심판을 대신 받으셨으며,
스스로 화해의 제물이 되심으로 아들의 자리에 우리를 앉게 하여주셨으며,
죄의 지배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마귀의 권세에 대하여
 죄의 삯은 사망으로 모두 지불하여 주심으로 완전히 죄의 노예에서
벗어난 자유인으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칭의는 하나님 편에서의 선언입니다.
우리의 상태가 어떻든 하나님의 선포가 우리에게는 제일 중요합니다.
그 것을 알고 칭의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인 것입니다.


2. 우리는 의롭다 여김을 받기 위하여 어떤 믿음을 가져야할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두가지 방법으로 창조하였는데 아답은
근원이 흙임으로 흙의 속성을 지닌 인간으로, 주님은 근원이 생명인
생령의 여인으로부터 성령님에 의해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즉, 육신의 탄생과 영의 탄생으로의 구분이 된 탄생 구조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도 두 구조의 탄생과정을 거칠 수 있으며
육적인 틴생에서 영적인 탄생으로 변화될 수 있게 하여주신 것입니다.


1] 이 과정은 대표와 연합의 원리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지게됩니다.

아담은 전 인류의 조상이자 인간의 대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언약을 우리와 맺으신 것이 아니라
대표인 아담과 맺으셨습니다.

허나 아담이 그 언약을 지키지 않자 죽음과 저주와 영벌이 주어지게 됐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어도 우리의 대표가 죄를 지음으로
그의 후손은 자연히 똑같은 저주아레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 것이 육의 탄생의 비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성도를 구원하시고자
새로운 탄생의 인간을 대표로 삼으셨습니다.
즉 생령의 인간의 몸에서 성령의 역사로 탄생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흙으로 돌아가야할 죽음의 속성이 없으시고
 육신의 죄성으로 잉태하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잉태하셨기 때문에
육의 죄된 욕망의 근원이 몸에 없으신 분이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육의 탄생이 의미가 없어진 것은
곧 죽게 되는 삶이기 때문이며 영의 탄생이 중요한 것은
이 탄생으로 영원히 살수 있기 때문닙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두 대표를 인간의 조상을 삼으시고
육의 연합으로는 아담의 후손으로, 영의 연합으로는
하나님의 후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새 생명의 구원의 길을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여 놓으신 것입니다.


2] 아담과의 연합은 우리에게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세상사람들이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려고
이 세상에서 행할 수 있는 것과, 구할수 있는 것을 총동원 해보지만
모두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물질 세계에서는 영의 세계의것 영생을
하나님외에는 허락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오직 자범죄는 줄이거나 없앨 수 있어도
원죄는 자신의 생명 이전의 생명에서 유전된 것이기 때문에
마치 인간이 성도, 체질도, 부모와 달리 할 수 없음같이
죄의 유전도 아담과 달리 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즉, 자의건 타의건 아담과의 연합된 육의 탄생은
아담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죄 속에서 살다 죄 속에서 죽는 삶입니다.


3] 예수님과의 연합은 우리로 죄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되어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게합니다.


우리가 육으로 아담과 연합되어 있듯이 또한 영으로는
예수님과 연합될 수 있습니다.
이 연합의 과정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주님 안에서
거듭 태어나는 것이며 이 것은 오직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된 성도들에게만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십자가 위에서
육의 아담과의 연합은 죽어 끊어진 것이며,
부활에 의해 주닙 안에서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거듭남의 증거가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즉, 죄에서 멀어진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있는 삶을 살게 만들고 이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삶에서
하늘의 것을 좇아 사는 삶으로 바꾸어지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연합과 '이신칭의'와의 관계는
총 구원의 과정인 : '예지-예정-소명-중생-칭의-양자-성화-견인-영화'의 과정중
에서 중생을 칭의 로 이어주는 중요역할을 하게 하여 줌으로 이 의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비로서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3. 올바른 칭의의 인식은 성화와 영화의 과정을 수반합니다.


칭의로써 인간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인식을 가질수 있습니다.
이 것은 나의 지적인 인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칭의- 전의 과정인 '-소명과 - 중생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반드시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진 후에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죄사함에 대한 기쁨만 가질 때에는 지적으로 구원과정을 이해했을 때에
생기게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까?' 하는
성화의 단계를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은 성령님에 의해서 주어지게됩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있을 때, 성령님은 능력이나
은사의 대상으로 취급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적인 마음이 있을 때는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으로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시는 분으로 모시게됩니다.
이때 성화의 길을 가야만하는 성숙함의 의무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이 예수님의 은혜를 고백한 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은 당신의 겸손으로 은혜가 무엇인지 확증하셨습니다.
은혜가 당신을 비천하게하고 모욕당하게 하였습니다.

은혜가 당신으로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죄의 짐을, 눈물의 짐을,

하나님의 저주의 짐을 지게하였습니다.

은혜는 당신의 옆구리에서 흐른 당신의 피와함께 흘러나왔습니다.

은혜는 채찍으로 맞은 당신의 그곳에서, 가시로 찔린 그곳에서,
그리고 못으로 박힌 당신의 그곳에서 나타났습니다.

천사들을 경탄케한 은혜, 죄인들을 복되게한 은혜,

마귀들을 놀라게한 은혜, 그것이 당신의 은혜입니다."


칭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구원받은 은혜에만 만족하고
머무는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
더욱 성화의 길을 걸어 내 주 예수님을 닮아가야 되겠다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 참 신앙의 삶으로 나아갈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을 모신 바른 칭의의 깨달음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노력을 다같이 기울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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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일
(롬 1:7)


이 세상에는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과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두 가지 상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성에 속하는 것은 변화의 필요가 없는 반면,
계속성에 관한 것은 변화를 통하여 진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을 통하여
좀 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쪽으로 완성되어 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능이 발달해 감에 따라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도
과거에 비해 무척 발전되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인간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이 변화된
가치관은 종교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 14세기에서 시작된 문예부흥운동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인간중심의 문화적 성취와,
새 삶의 구현의 새 시대를 열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더 깊은 학문적 탐구와 더 높은 도덕적 정서와
민족적, 자긍심 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계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었는가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만든 원인의 한 부분이 된 것입니다.


1. 종교가 세상에 목적을 둘 때, 더 이상 영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종교는 지식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에 머리로 가르치기보다,
마음으로 가르쳐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란 신앙의 대상이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그 사람의 언행이 바로 신앙의 대상을 증거하는 행위로 표현 되는 곳입니다.
만일 성직자들의 마음 속에 주님 대신 세상의 것이 들어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 해도
더 이상 성직자로서의 자격은 상실된 것입니다.

1) 탐심은 세상의 유익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게 만듭니다.

15세기의 로마 카톨릭은 성직매매를 통하여
자격이 없는 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거금을 교황청에 주고 자리를 얻은 관계로
부정부패를 통하여 자신의 유익을 챙기는 무리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백성들로 하여금 교회가 더 이상 구제 보호처가 아니라
착취처로 반감을 사게 만들었습니다.

2) 음란은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권위를 남용하게 만듭니다.

향락생활에는 반드시 음란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직자들이 독신으로 지내야 하는 것이 교회의 공식적인 규칙인데도 불구하고
주교들과 신부들은 사생아를 낳아 그들을 수도원 수녀원에서 기르거나
또한 그들이 커지면 그들로 수도원장, 수녀원장을 임명하여
금욕주의 경건생활과는 먼 연회와 파티의 무대로
전락을 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예로 인문주의 자들의 왕자로 불렸던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도
신부와 의사의 딸 사이에서 난 사생아로서
평생 이러한 자신의 출생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3) 교만은 권세를 위하여 과도한 업적을 이루도록 만듭니다.

1500년도에 당시 교황은 레오 10세로 그의 야망 중 하나는
쥴리어스 2세가 시작하였던 성 베드로 대 성당을 완공 하는 일이었는데
이 건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판매하는 성직자들은 '이 면죄부는 죄인들을 세례보다
더 깨끗이 만들며
타락이전의 아담보다 더 순결하게 만든다.'
라고 선전했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을 위해서는
'헌금함 바닥에 동전이 딸랑하고 떨어진 순간에 연옥에 갇혀 있던
영혼은 화살처럼 솟아오른다.'
등의 감언이설로
주민들에게 막대한 판매대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시작될 때에는 경고를 주시지만
죄가 만연할 때에는 징계를 하십니다.

즉, 이 징계는 바로 종교개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2. 종교개혁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중심으로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종교개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마르틴 루터 입니다.
그리고 그가 카톨릭 교회의 죄상을 밝힌 95개의 신조문을
만성전 전날 발표하였는데 이날은 1517년 10월 31일이었으므로
이 날이 종교개혁일로 기록되어 오늘날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로 부르는 이유는
1523년 '누렘베르그'에서 열린 제국의회에서 결의된
'루터 주의자'들에 대한 융화 결정이,
루터를 이단으로 결정했던 과거 윔스 칙령이
또다시 1529년에 재 승인되므로 루터를 지지하는 이들이
공식적 항의문을 제출함에 따라 '저항하는 자들'
즉, '프로테스탄트' 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1) 마르틴 루터의 회심

루터는 1483년 독일의 아이슬레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아들을 법률가로 만들기 위하여 법학을 전공시켰으나
졸업을 앞두고 친구와 더불어 학교로 돌아가던 중- 비를 피하여
큰 나무 밑에 서있는 순간, 갑자기 번개가 나무에 떨어져 그 옆에 있었던
친구가 순간적으로 감전되어 재로 변해 죽어버리는 사고를 당하게 되자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자신을 살려주시면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함으로,
22세 때에 어거스틴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유달리 죄의식이 강한 사람으로서
그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고해성사와 나중에는 로마로 가서
주님이 끌려 올라가셨던 빌라도 28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회개와 죄 사함을 받기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엔 평화가 오지 않는 가운데 깨달음이 오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을 몰랐던 그는
1515년에 로마서 강해를 공부하던 중  
[롬 1: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 구절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그 때까지 잘못 깨달았던
하나님의 공의 즉, '심판 하실 의'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 행하신 공의로서 내가 그 것을 믿고 인정하여
주님을 받아들이면 죄인인 내가 값없이 의인이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당시 기존 교회가 시행하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들을
95개 조항으로 작성하여 당시 면죄부를 판매하고 있는 성직자들과
영주들의 행위를 지적하는 문서를 비텐베르그 교회 정문에 붙였습니다.

2)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내용

루터는 면죄부 판매에 대하여
만일 교황에게 영혼들을 연옥에서 해방시킬 힘이 있다면
그는 이러한 힘을 예배당 건축과 같은 하찮은 일에
면죄부 판매를 위하여 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성당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금으로 써야 하며
죄인의 영혼들을 위하여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사용해야 한다.
(82조) 라고 공시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결과로 그는 1521년 윔스에 소집된 의회에 소환되었습니다.
이 때 황제가 질문하기를 '그대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가?'란 질문에
대답하기를ㅡ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로잡힌바 되었습니다.
나는 철회 할 수 도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양심에 불복하는 것은 옳은 것도 안전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ㅡ아멘' 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1)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 위에 있어야 합니다.

카톨릭에서는 성경의 정경성 여부를 교회가 결정한 만큼
교회가 성경보다 우선적인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루터는 반문하기를 교회가 성경을 만든 것도 아니고, 성경이 교회를
만든 것도 아니며, 성경과 교회 둘 다를 존재하게 한 것은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최종적 권위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분의 말씀이어야 함을 주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말씀하실 땐 그분의 능력도 함께 하심
- 천지창조 이것이 최종 권위의 증거임)

(2) 율법은 죄를 위하여 주어지기보다 죄를 안 짓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며, 복음은 지은 죄를 해결해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율법은, 복음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는
심판과 정죄의 역할로 다가오기 때문에 두려운 징계로 여겨지나
복음의 은혜를 깨닫고 나면 율법의 성격이 변하여 오히려
나에게 죄를 안 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할 일을 가리켜주는 인도의 역할을 하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해 죄인에게는, 지은 죄가 거론이 될 때마다
마음에 죄책감을 유발시켜 싫지만 의인에게는
어떤 죄목이던지 마음에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런 죄를 왜 짓나 착한 일을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대속으로 의인이 된 신자는 믿음 안에서
모든 죄에서 해방이 됨을 느끼고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3) 성찬의 의미는 ‘화체설’이 아니라 ‘공재설’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성찬식 시 직접 떡이 주님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피가 된다는 "화체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루터는 떡은 계속 떡이며 포도주는 계속 포도주이지만
주님께서, 내 몸과 피로 제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 신자는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행동을 통하여,
믿음으로 주님의 몸과 피의 혜택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공재설" 이라 하며 성찬의 공재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세가지 주장은 신학적으로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개신교의 태동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3. 종교 개혁의 결과들

루터의 세 교리 주장을 필두로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의 진리를 새로 정립하는 활발한 활동들이 전개 되었으며
이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존 칼빈이었습니다.
그는 여러가지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한데 묶어
체계를 이룩한 위인이었습니다.

1) 존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칼빈주의를 낳게 했으며
장로교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칼빈은 루터보다 26년 후인 1509년에 프랑스의 '노용 '이란 도시에서
이 곳 성당의 참사회원으로 있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미 20세에 위클리프, 후스, 루터의 가르침에 통달한 명석한 젊은이였으며
그 때까지 취급되지 않았던 삼위일체, 성육신, 성령론 등을 정리하여
4권 80장에 이르는 기독교강요 전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찬에 대한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하여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그러나 진정으로 성찬에 임하신다는
'영적 임재설'과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를 통한 교회 운영등과,
이미 구원 받을 영혼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여 놓으셨다는,
예정설은 장로교의 기본교리가 되어 운영되게 되었습니다.

2) 요한 웨슬리의 모라비안의 경건과 개혁파의 특징인
사회적 활동을 결합시킨 사역은 감리교를 창설케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사무엘 웨슬리 사제와 스잔나 사이에서 15번 째 아들로
태어난 아들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홀리 클럽"이란 모임을 만들어
한 주에 한번 성찬과, 개인적 경건의 시간을 가지며,
정기적으로 감옥을 방문하여 죄수를 위로하고, 매일 오후,
한 곳에 모여 3시간씩 성경공부를 하는 단체를 운영하였습니다.
주변에서 이들의 모임을 '메소시스트'라고 부름으로
오늘날 감리교 명칭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신도를 지도자로 삼아 11명씩 감당하게 하고, 특히 영국
국교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여성들을 지도자로 세워,
여성들만을 인도하는 기회를 줌으로
많은 여성 사역자 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웨슬리 자신은 감독이라는 명칭보다는
"슈퍼 인텐텐트"의 호칭을 사용하기 원했으나
미합중국 내의 감리파가 감독중심 교회를 조직함으로
감독체제로 운영되는 감리교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칼빈의 예정설 과는 달리 만민구원설과 (알미니안주의),
성찬위주의 예배는 감리교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교단과 교파가 각자에 알맞은 교리 위에 세워져
개신교 시대의 막을 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종교 개혁일을 맞는 각 교회 성도들은
이 날을 계기로 많이 변질 된 개신교의 모습을
다시 성경중심으로 되돌아가는 기회로 삼아
참된 신앙의 회복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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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
(롬 6:3-5)


예수님께서 신약교회에 두가지 의식을 지킬 것을
말씀하셨는데 이를 성례전이라 부릅니다.

 첫째는, 세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이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표를 받는 것이며,
둘째로, 성찬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으로서
몸을 대신하여 떡을, 그리고 예수님의 피를 대신하여 잔을 마심으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성례는 바른 의미를 알고 참예 할 때에 더욱 큰 은혜가
되며 믿음도 달라지는 변화의 체험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1. 세례란 무엇인가요?

1) 세례의 의미는 세상과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홍해 바다를 건너게 되었을 때, 모세가
지팡이로 바다를 향하여 가리키자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그 사이를
통과하여 지나갔으며, 그들 위에는 구름기둥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통과하였음은 애굽과의 마지막 이별이요,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길이 되었습니다. 이를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아래 있고 바다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즉 세례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유로운 백성이 되었듯이 우리들도 세례를 통해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순종으로 행한 것같이
신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세례에 참가하여
세상에 속해 있던 죄된 모습을 장사 지내고 새 생명으로
태어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롬 6:4)

 (2)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 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함을 얻었음 이니라' (롬 6: 5-7)

이 말씀 중에 '합하여'라는 단어의 뜻은 '속으로' 라는 의미로
이말은 즉,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 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따로 나따로 지내왔는데 세례를 통하여 얘수님 안으로
들어가 연합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례를 통하여
예전에 있던 나의 모습은 차차 사라져 가는 반면,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이 점점 나타나게 됨을 의미합니다.

2. 세례의 대상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1) 예수님과 함께 물에 잠김으로 나의 옛 사람은 죽어
죄에서 해방되고,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2) 예수님과 함께 물속에서 일어남으로 주님의 부활에
속한 사람으로 새 생명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자신의
구세주로 모시기 원하는 사람이면 받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일 경우 유아세례를 원하는 부모도 있으나, 아기가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성장하여 믿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을 때 받는 것이 좋으며 아기 때는 대신
 이 아이를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는 헌아식이 바람직 합니다.


3. 세례의 방식은 세가지가 있습니다.

1) 완전히 물에 잠기는 침례: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의 방법으로
흐르는 강물 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 하셨습니다.

이 뜻은 이 침례가 나로 구원 사역을 다 이루게 하여, 모든 사람들이
의로와 지도록 십자가에 달리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침례는 물속에 잠기심으로 그의 죽으심을 말하는 것이요, 또한
일어나심은 부활을 의미함으로 이 과정이 있어야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었던 죄인들이 의인으로 변화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상에서 이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 이루웠다'하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2) 물을 붓는 세례: 이는 물이 충분히 없는 지역이나 물을 사용하기
어려운 제한된 환경속에 있을 경우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번 물을 그 머리위에 부음으로 행하는 세례입니다.

3) 물을 뿌리는 세례: 노약자나 병든자가 거동하기 어려운 가운데 세례를
받기를 원하는 경우 머리에 물을 뿌림으로 세례를 주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나 될수 있으면 흐르는 강물에 몸을 담그는 침례방법이
'내가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은 죽고, 함께 연합되어 새 생명으로
살아난다'는 의미를 주는 것임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4. 세례의 효과와 은혜는 무엇인가요?

1)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4)


나의 옛 사람은 물속에서 묻어 죽었음으로 옛 성품은 남아있는
육신속에만 휴우증으로 남아있을뿐, 내안에는 예수님이 계심으로
그분의 생명으로 살게 됩니다.  마치 여인이 결혼하여 시댁에가서 살면
성도, 신분도, 생활양식도, 분위기도, 모든 공급도,  그쪽 방식대로
바뀌어 살듯이 예수님 안에서 신부된 우리도 변화를 받고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세례를 통하여는 연합속에서
죄는 죽고 세상을 이겨나갈 새로운 힘이 생기게 됩니다.
         
  2) 새 신분으로 살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영국의 유명한 전도자 '스펄젼'은 침례를 군인의 제복에 비유하였습니다.
성도도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그리스도의 옷인 군복을 입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군복이 충성할 나라와 충성할 대상을 결정하듯이, 성도들도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며 예수님을 대장으로 모시는 새신분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3) 약속된 유업을 받게 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부모의 유산을 상속 받을 땐 법적인 자녀의 경우에만 해당이 되듯이,
하늘의 유업도 예수님께 속한 자라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축복을 이어받을 자격을 갖게 됩니다.

즉 이땅에서의 약속은 땅과, 이름 존귀와 자손 증대를 말씀 하셨고,
하늘나라에서는 후사로서의 유업을 이루워 주실 것입니다.
 
이와같이 세례의식은 예수님께서 모든 인간을 위하여 이루신
구원사역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사역에 동참하여
나의 죽음, 장사, 부활의 인식을 갖고 믿음으로 세례에 임할시
새롭게 변화되는 생활의 체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모두 진정한 세레를 받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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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도
(롬 8: 26-27)

 

하나님은 우리가 거듭 태어날때 기뻐하시지만, 정작 예뻐하시는 때는
자녀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며 아버지께 기도할 때 입니다.
자녀된 우리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고
감사드리는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도를 올바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두가지 통로를 사용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1) 예수님을 통하여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어느날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기도와 주님의 기도가 응답면에서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방법과 내용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즉, 하나님과 나에 대한 관계를 깨닫고, 영광과 존귀를 올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워지기를 소원하고 나의 필요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회개하며 대적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시며 승리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서로 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2) 성령님을 통하여 기도하는 자세에 대하여 알려주십니다.

기도의 방법과 내용을 주기도문을 본받아 할지라도 대부분 실제로
기도행활에선 응답을 체험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 문제를 사도바울은 엡 6:18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하되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에는 성령안에서의 기도와 육체안에서의 기도가
있음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고 하였습니다.

육체와 정욕은 자아가 주인으로 있을 때 강하게 욕구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럴때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 보다는 내뜻의 주장과 요구가 기준이 되며
응답은 더욱 큰 욕구를 유발시키게 됩니다. (예: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그러나 거듭나 성령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어 드려지는 기도는 욕심을 실은
기도보다는 마음을 실은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나의 사역에서 주님의
사역으로, 앞선 사역에서 인도를 받는 사역으로 기도의 내용이 변해지게 됩니다.

성령안에서의 기도가 거듭난 마음에서의 기도라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삶은
깨어있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깨우는 영이요, 육신은 잠을 자게 만드는
무거운 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들은 제자들을 보시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신 것은 아직은
성령주도형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육신주도형 삶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신 삶에는 유혹과 시험에 빠지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순간인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제일 먼저
주님을 뵈올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하는 것은
 영적으로 상황을 잘 파악한 경우 드려지는 기도가 됩니다.

2. 이와 같은 자세로 기도할 때 성령님은 두가지 면에서 간섭을 하시게 됩니다.

(1) 기도의 실감이라는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스스로 깨어있는 마음 속에 기도가 되지 않는
영역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회개의 영역이고, 또 하나는 체감의 영역입니다.
회개가 깊이 되지 않는 이유는 이성이 강하여 지성에 의한 회개만 나오기
때문이며 이때에는 행위에 대한 죄만 대부분 기억했던 것이 회개로 나나타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영혼에 감동을 주시면 행위 죄보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멋대로 산 교만죄가 더 크게 깨우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죄가 고백될 때 통회자복이 나오게 되며
그때가 지나야 용서함의 확신이 오게됩니다.

 또한 기도의 간절함이 실리지 않는 이유는 경험이 없음으로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기도에는 진정한 감사기 드려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를 때때로 경험의 영역으로 몰아넣으십니다.
예를들면 질병, 사고, 배신, 파산, 고난, 등 이 과정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왜 그분께 간절히 기도를 해야하는 지를 알게
해 주는 도구들입니다. 경험을 하고나면 체감도가 높아지게 됩니다.

관계에서 서로 중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공감이 없이는 깊이도, 친밀도 이루워지기 어렵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나님과 깊은 공감을 갖게 하여주시며, 그 교류가 바로
성령안에서의 기도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2) 이 과정을 지나고 나면 기도의 표혐의 영역에서 도와주십니다.

즉, 기도할 때는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과 하나님께서 듣기를 원하시는
내용은 맞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예: 한나)

한나는, 무자함의 서러움을 기도하다 너무 지켜 중얼거림으로
엘리 제사장은 그녀가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토록 원통함이 기도를 드렸어도 응답을 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아이를 여호와께 드리고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않겠나이다.'


그래서 바울은 '롬 8:27''마음을 감찰 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 이니라'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분의 계획을 이루기 원하는 소원의 기도를 듣기를 기다리십니다.
 그것이 나에게 맡기시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사명적인
삶보다는, 생활적인 삶에서만 그치려는 신앙생활을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깨달음과 계시로 우리들을 사명적으로 탄생하도록
도우시고 그일을 위하여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 지를 알려주십니다.
(예: 사도바울 ' 가시 채를 뒷발질 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 26:14)

3. 기도생활을 통한 성령님의 역사하심

성령님의 기도의 내적사역이 친밀관계의 사역이라면, 기도의 외적 사역은
동역관계의 사역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주신 것은 이 땅에 주님의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함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목표나 목적만을 계시하시고 과정, 시기, 순서 등은 세부적으로
말씀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이길은 철저히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고만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성령님은 세가지 면에서 도와주십니다.

(1)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사역은 거의 인간의 판단과 파악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습니다.
마치 바울을 로마로 후송하는 알렉산드리아호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행하다 '유라굴로 태풍'을 만나 고생하듯이 사역도 항해와 같아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는 성령님의 등대 빛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2) 영적상황을 알게하여 주십니다.

사역자일수록 마귀의 공격대상이 되기 때문에 유혹, 부정, 욕망, 등에
쉽게 빠지기 쉽습니다. 대개 꿈을 통하여 대적의 정체나 현재와 미래의
영적위기상황을 계시하심으로 대처하게 해 주십니다. 영분별에 대한 은사를
베풀어 주심은 영적전투의 기도를 많이 올릴 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3)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도움을 주십니다.

말씀과 사역에 능력이 실리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개입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실 때와, 12제자들과 사도바울이
성경말씀을 전하였을 때와, 오늘날 교회에서 같은 말씀을 전할 때와
말씀은 같아도 역사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마치 도끼날이 빠진 자루만
휘두르는 격이 되었습니다. 물속에 있는 도끼날을 찾아 말씀인 도끼자루에 끼고,
휘둘러야 심령이 쪼개지고 어두움의 세력이 쫓겨갈텐데, 성령의 도끼날이
어디에 빠져 있는지 도무지 찾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엘리사는 나무가지를 던졌고, 도끼날은 물속에서 떠올랐으며
도끼임자는 찾아 자루에 끼워 나무를 베었습니다.
도끼를 떠오르게 한 나무, 즉 오늘날 세상에 던져진 십자가는
유일한 성령님의 처소를 불러 올리는 길입니다.

십자가만 붙들고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 놓을 때
성령의 도끼는 우리에게로 나타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기도는 증인이 되기 위한 기도입니다.

성령님이 이 기도를 받으시면 권능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가장 중요한 두단어 권능과 증인은
바로 성령과 십자가 기도로 대변되어질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모두 성령안에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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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그리스도인

(롬 8:9)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여행을 두가지 방향에서 하며 살고 있습니다.
  첫째, 외부로 향하는 여행- 자신의 생존과 만족을 얻기 위하여 세상과
사람들과 사물들과의 관게를 좋게 맺으려는 삶을 말합니다.

둘째,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 평안과 자유함을 얻기 위하여 정신의
셰계로 심취하는 삶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불행은 시회구조상 삶의 균형이 깨어진 상태에서
살기 때문에 오게 됩니다. 바쁜 삶은 내면의 세계에 대하여 방치하도록
내버려두게 함으로 영혼은 메마르고 삶은 건조해 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균형을 영혼이 중심이 되어 하는 일들이
보람되고 건강한 삶을 살도록 알려 주십니다. (요삼 :2)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와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 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령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대개 한사람을 정의 할 때에 그 사람의 소속이나 신분, 또는
그밖에 하는 일 등을 살펴봄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을 생각할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가
속해 있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그 신분도 일도 정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1.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속해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롬 8:9)
 
여기에서 영에 있다는 말은 새로운 영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전엔 육신의 영역에서 살고 있었으나, 이제는 어느덧
영의 영역에서 사는 사람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인간의 구조는 영과 혼과 육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로서 나왔고, 혼은 하나님의 생명의 영이
육신에 닿았을 때, 생겨난 정신인 자의식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그러므로 영의 영역은 - 하나님과 연결되는 부분이고,
육은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고
혼은 영과 육의 중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이 주어진 것을
몸에 전달하여 신령한 영체가 되도록 선도해 가는 수단 이었습니다.

자유의지를 지닌 하와는 어느날 말씀과 물질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어떤 쪽을 선택하느냐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가 되는 것입니다.

'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3)

불행하게도 물질을 선택한 하와는 육에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가 없어진 영은 폐쇄가 되게 되었고,
혼의 주인으로는 자아가, 육의 지배자로는 욕망이 들어차게 된 것입니다.

물질의 세계는 영의 원리로만 다스릴수 있게 하셨는데 인간은 영에서
육의 차원으로 전락되자 그만 물질 세계에 속한 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물질과 육에 속한 바로 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다시 새로운 영의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나 대신 심판을 그분이
먼저 받으심으로 새로운 탄생의 기회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 구원의 도리를 성령님이 적용시켜 주실 때 우리들은
영적으로 다시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바로 이 말씀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서,
그 영에 속해 교제하는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사는 사람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 중거가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바로 어디에 속해있느냐는 이른바 소속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영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4-15)

2.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주와 합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연합에는 육신의 연합(남.여의 경우)도 있고,
혼의 연합(동지의 경우)도 있고,
영의 연합이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이란 부활하신 예수님께 주인의 자리를 내어준 사람으로
이는 자신의 자아와 싸워서 그 자리에 주님을 모신 것을 의미하며 육신의
욕망과 싸워서 자신의 몸을 주님이 다스리도록 맡긴 사람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연합도 혼의 연합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만 유지됩니다.
그러나 영의 연합이란 영원한 세계까지의 연합이 지속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의 관계를 이 세상에 사는 동안만 국한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영생의 관계를 위하여 영의 연합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예수님과 비슷한 행실을 하고 산 사람이 많습니다.
예컨대 홀몸으로 선을 추구하고, 악을 멀리하며 행실을 바르게 하고
깨우침을 받고 살려고 노력하는 수도승 들이나, 타 종교의 위대한
인물들은 이와같은 행실을 보여준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연합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산 사람들도 많습니다.
인도의 간디 수상은 무저항주의, 평화주의 자였으며
성경도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힌두교인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았지만,
결국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거룩, 경건, 선행, 사랑, 평화를 행하며 살고
있을지라도 자신안에 에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을 경우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닐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을 '예수님의 신부'로 말하고 있습니다.(계 19:7)
결혼이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며 다른 사람과는 연합을
이룰수 없는 신분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친구사이요,
좋아하는 사이로 지내면서 세상과 연합하여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연합인 삶에는 성령님이 다른 것으로는 끼어들수
없도록 완전히 하나가 되게 묶어 주십니다. 이와같은 연합이 하늘나라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신부의 자격을 얻고 살게 하는 길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과의 다른 점은 영적인 안목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에게는 예비되어진 축복과 은혜가
놓여있습니다. 성령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찾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여 세상에 속해
사는 삶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기대하며 감사하고 살때에
성령님은 때가 되어 한가지씩 찾아 예비하심을 맡게 하여 주십니다.

(예: 요셉이 애굽총리가 되도록 인도하셨고,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도록 인도하셨고, 사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인도하셨음)

우리가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증거는 바로 사명적인
 삶을 살도록 하신 것이 됩니다. 목적지가 천국이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삶은 결과적으로 천국에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혼과 육의 인도는 세상의 구경거리를 안내하는 것으로
그치고 말기 때문에 굳이 천국의 일을 위해서는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명적인 삶만이 하늘에서의 상급을 받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기업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의길로 인도하여 주셨으며, 성령님은 구원받은
우리들을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예수님을 닮은 후사가 되기까지 연단과 훈련을 시키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도와주시는 좋은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순종으로 성령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 때에, 그로부터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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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그리스도인
(롬12:2)



인간의 제일 정확히 파악하고 살아야 되는 일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시고, 또 하나는 내가 살고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가 확실하여 이세상에서
존재의 의미와 뜻을 다하고 보람되게
살다 천국에 갈수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는 문제에 대하여
행복하게 살기 보다는 무심히 불행하게
사는 경우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안다면 우리의 삶은
큰 의미를 지닌 만족한 삶이 될 것입니다.


1. 세상이 무엇인지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을 의미하는 말에는 두가지 의미의 개념이 있습니다.
'에레츠'- 창세기에 처음 나오는 말로 하나님이 만드셔서
인간에게 대여한 장소,곧 인류가 사는 처소로
세상의 의미를 말합니다.(창1:1)- 예, 에덴동산

'테벨'- 죄가 들어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을 타락 시킴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된
세속화된 세상을 말합니다.

인간이 불행한것은 세속화된 세상에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볼수있습니다.

(1) 인간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다 줍니다.


죄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존재하게 됩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찬 곳이기 때문에 심판으로 없어질 곳이며
죄성을 가지고 이 가운데 사는 인간들도
 똑같이 두려움을 느께게 됩니다.

인간에겐 죄가 없는 장소와 죄 문제가 해결된 마음의
쉴곳이 필요한데 그곳은 오직 모든 저주와 죄를
해결해주신 예수님이 계신곳 밖에는 없습니다.

(2) 인간을 유혹하고 미혹 시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것이라'(요1서2:15-16)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지배원리는 다음의 세가지 입니다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유혹은
니쁜 것으로 부터 오는 것이지, 선한 것 으로 부터 오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분수를 넙게 만들고 분수를 넘는
부분들이 모두 죄가 되는 것입니다.(음란,탐심,교만)


(3) 인간에게 싸움을 일으킵니다.

'도적이 오는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인간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더큰가?
미워하는 마음이 더 큰가?
소유하려는 마음이 더 큰가?
비우려는 마음이 더큰가?

소유하려는 욕심이 더 크고, 미워하는 마음이
더 많기 때문에 남의 몫을 시기하여 빼앗으려는
생각이 들어 다투고 싸우게 됩니다.

세속화된 세상은 인간들에게
성공(나의 뜻)이 성취(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하고, 물질이 인격보다 더 중요하고,
조직이 개인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성공을 해도 불안과 욕망과
시기는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려면 피해야 할 것과 나타낼 것이 있습니다.

1) 세속에 물드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1:27)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사랍입니다.
구원의 의미는 건져내어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빠져 나온곳에 다시 섞여지면 안됩니다.
이것은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세상에 등지고
 멀리 떠나 사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속에 살되 그것과 혼합되어 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가치관이 다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거듭남)으로부터
이루워질수가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내 속에 세상적인 것들을 담고
살아왔으나, 거듭남을 통해 내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물과 기름은 함께 있을짜리도
 섞이지 않습니다. 항상 기름은 물위에 떠 있습니다.
이는 같은 액체 이지만 성분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세상속에 사는
사람들과 같을지라도 속성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에 의해 죄돤 세속성은 씻음받고
하나님의 속성이 속에 생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죄된 속성이 들어와도 주님의 보혈로 씻겨지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이 죄의 성향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유일한 길은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길뿐입니다.

2)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온전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마5:13-14)


이 세상을 청결하게 해주는 두개의 큰 요소는
소금과 태양 빛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세상에서
그 역할을 할때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1) 소금의 역할이란 하늘나라의 맛을 내는
성령의 열매의 역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속에 있어도 변화가 되지 않는 원인은
소금이 녹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이 있어도
 행함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녹지않는 소금인 것입니다.

미움이 만연 한곳에 사랑의 소금이 뿌려져야하고,
불평이 있는 곳엔 기쁨이, 경쟁이 심한 곳엔 기다림이,
욕심엔 자비가 인색한 곳엔 베품이, 변덕이 심한 곳엔 지조가,
다툼에는 양보가, 욕망이 가득찬 곳엔 자제하는 모습들을
보여줄때에 우리 주변은 훈훈하게 될 것입니다.
 

(2) 빛의 자녀들의 역할은 착함, 의로움, 진실함 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9)

상처가 곪은 부분이 있으면 도려내면 되지만
 썩은 부분이 있으면 잘라내든지 버릴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균이 이미 전체로 퍼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인간의 눈으로는 부분적으로 곪은데가 있다고
볼수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는 썼었기 때문에
조만간에 다 버려야 할 심각한 상태까지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때
 의인 10명만 있으면 멸하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한 도시에 열명의 빛의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만 있다면
오늘날도 그들 때문에 이세상을 멸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의인의 역할이 바로 빛의 역할이자
선함, 의로움, 진실함 입니다.

선은 악을 멀리하는 것이요,진실은 거짓을
멀리 하는 것이요, 의인은 부정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속된 세계를 창조된 시점의
세상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 입니다.

내 마음을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로 닦으면 주님의 빛이
나의 마음의 거울에 반사되어 어두운 세상을
환히 비쳐줄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때 주님의 거울 앞에서 다시한번
나를 비추어보고 오늘도 세상으로
달려나간다면 내가 있는 곳은 그야말로
환하고 밝은 회복의 처소가 될 것입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떠날 세상이지만
세상을 버리고 떠나지 말고
만들고 떠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때
세상은 나의 소중한 곳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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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후사
(롬 8:17)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는 두가지 기둥이 있는데
그것은 십자가와 성령님 이십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지금까지 지내온 세속적인 모든것을
청산함의 뜻이며(죄인의 신분,성향,속성,목적,추구,근성,등)

성령님의 의미는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으로 모든 것의
완성을 의미합니다.(칭의,양자,성화,견인,영화,후사,등)
중요한 것은 십자가 아래서 다시 태어난 몸이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하는가에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양자됨의 세단계가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자녀의 단계-칭의로 법적지위를 얻고
죄에서 해방된 상태(요1:12)

들째, 아들의 단계-성령님의 내주 하심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상태(롬8:14)

셋째, 후사의 단계-에수님과 연합하여 고난과
영광을 함께 누리는 천국 상속자의 상태(롬8:17)


1. 이땅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후사가 되도록 준비하는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구원의 최종 목적은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예수님을 닮은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그 이유는 주님과 함께
천국의 기업을 상속하여 주시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땅에서 받아 누리는 분깃에만
만족할것이 아니라 천국의 유산을 상속받을 후사가 되는
영광스런 자신을 바라보고 사는것이 바림직한 일입니다.


1) 상속권 자가 되기 위하여는 예수님과 합한
연합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롬8:17)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실 때, 평가하실때,
또한 무엇을 맡겨주실 때, 모두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워 주십니다.

그 이유는 에수님이 우리의 모든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재림시 우리를 부활시키시며
어린양 혼인 잔치에 신부로 맞아 들이시는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후사이시자
상속권 자가 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모시지 않고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속을 우리는 독자적으로 받을수 없습니다.
후사의 자격은 제일먼저 예수님과
연합한 삶을 살때에 주어지게 됩니다.


2) 후사가 되기 위하여는 또한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을 기쁘게 받아 들여야합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할 것이니라'(롬8:17)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세상은 죄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을 싫어합니다.
성도들도 마찬 가지로 세상의 자녀들이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예:이스마엘이 이삭을 싫어한 것은
유업을 못받기 때문이었듯이)

세상 자녀들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가 없으므로
 무조건 싫어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세상의 핍박과 고난을
허용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를 더욱 주님을 닮은
온전한 자로 성숙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2:10)

온전케 된다는 것은 영광의 자리에 합당한 자격임을
의미하는데 이는 주님과 함께 고난을 통과한 사람만이
갖출수 있는 성숙함 입니다.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허지만 우리는 죄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거룩함 만으로는 죄를 제거할수 없습니다.
죄는 댓가를 치뤄야만 속죄 되어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온전하게 되어질수 있는 길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때 에야만 비로서 인간
으로서의 온전함을 이룰수가 있는 것입니다.

속죄가 고난을 수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5:8-9)

고난은 순종의 여부를 기리우는 시금석 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온전함을 이루웠듯이 성도들도 고난을 통하여 주님께
순종함으로 온전해 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예수님이 겪으신 핍박의 이유를 깨닫게 하며
나의 죄에 대하여 회개를 깨닫게 하며 주님이 흘리신 보혈에
 나의 고난을 귀속 시킴으로 어떠한 고난도
주님께 순종함으로 달게 받을수가 있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오는 고난이 영광과 밀접한 관계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 받게 되는 상속에는 7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속은 아들이 된 시점부터
시작이 되는데 그말은 이땅에서는 분깃으로 주어지게되고
아울러 천국에서는 유업으로 예비되어져 있는 것을 받게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나중에 누릴 안식과
영광을 바라볼때 이땅에서 결코 실망을 느끼기 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수 있는 것입니다.

1) 영생의 상속자가 됨

'네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자마다
여러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백배의 축복은 이땅에서 받는 것이요,
영생의 축복은 내세에서 받는 것입니다.

2) 구원의 상속자가 됨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천사로서
구원얻은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1:14)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후사가 되도록 준비하는 자들에게는
지금부터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며 장차 하늘에
들어가면 예수님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3) 약속의 상속자가 됨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뜻이 변치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6:17)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복의 근원, 자손증대,
대적의 문을 얻게 하심(창22:16-17)
이 세가지가 이루워지게 됨

4) 의의 상속자가 됨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후사가 되었느니라'(히11:7)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은 의로 여김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벗이란 친근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5) 하나님 나라에 상속자가 됨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2:5)

심령이 가난한자는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게 됩니다.
천국은 이들의 소유입니다.

6) 기업의 상속자가 됨
'썪지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

구약에서의 기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지만
하늘나라에서의 기업은 썪지않고 깨끗한 영원한
영역이 기업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7) 만물의 상속자가 됨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계21:7)

이것들이란 만물이 새롭게 변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며 새 천지를 상속받고 살게 됩니다.
 
이 세상의 삶은 지나가는 삶입니다.
그 이유는 한정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라지는 존재는 없는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인간에게 영혼을 주신것은 영원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태어난 육신은 물질과 합하여 살때 편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어진 영혼은 영원과 합하여 살때 편함을 느낍니다.

인간의 불행은 이같은 이원화 구조때문에 오게 됩니다.
이것을 예수님게서 일원화 구조로 바꿔주셨습니다.
그것이 거듭남이며 완성이 부활입니다.

시작은 씨앗으로 시작하지만 열매는 씨가 아니듯,
시작은 육신으로 시작하지만 부활의 몸은 육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내가 아닙니다.

바로 후사가 된 모습이 나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구원받은 목적은 후사가 되기 위함임을 알고
신앙생활 할때 앞에 놓여있는 영광이 지금의 나의
모든 부족과 고난을 기쁨으로 덮어줄 것입니다.
우리모두 진정한 모습인 후사됨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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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
(롬 8:14)




하나님은 구원의 진행을 3단계로 나누워 완성하십니다.

1단계 - 자녀의 단계
: '예수님을 믿음' (요 1:12)

2단계 - 아들의 단계
: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화되어가는 과정' (롬 8:14)

3단계 -
후사의 단계: '부활의 주님과 연합하여
고난을 통과함으로' (롬 8:17)입니다.

성도들은 자녀된 일반은혜에만 국한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아들의 단계에 이르러
마침내 후사가 되어, 하늘나라의 유업을 기업으로
받아 누리는 삶을 목적으로 사는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한 참된 마음이신 것을 알고
아들로서의 자격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이 이땅에서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자격을 갖출수 있는길을
다음과 같이 네가지로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화평한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받게 됩니다.

'화평케 하는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것임이요'(마5:9)

인간의 마음에는 이기심과 정욕이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서는 갈등을 일으키고 나아가서 밖으로는
남과 불화를 일으키게 만듭니다.(약4:1)

그래서 내속에 있는 욕심을 없애지 않고서는
남과 화평을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땅에서의 욕심을
하늘나라에서의 욕심으로 바꾸고 사는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12제자들은 예수님이 이땅에서의 왕이 될것을 기대하고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가졌으나, 나중에 예수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것을 알고 소망을 하늘의 것으로 바꾸고 살았습니다.

즉, 이땅에 두고 갈것과 하늘나라까지
갖고 갈수있는것을 구분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혼과 육에 관계되는 것
(출세,영광,부귀,영화, 안일)을 줄이고
영혼에 관계되는 것(영생,부활,천국,재림,상급)을
늘이고 산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막힌담을 허물으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룰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우리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하나님의 영혼구원하심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살며
아버지가 잃은 자식을 얻은 기쁨으로 나에게 얼마나 고맙게 여기실까
하는 즐거움으로 모두 형제처럼 화평을 이루워 산다면
이는 아들로서의 역활을 다하고 사는것이 될 것입니다.

2.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길 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게신 너희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5:44-45)

성경에서 말하는 원수라는 단어의 의미는 두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미워하고 맞서는자들이 진정 우리들의 원수들입니다. (시139:21)



가나안땅의 31개 나라와 31개 왕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에게
모두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을 섬긴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골리앗을 무찌른 이유가 하나님을 모욕하였기 때문이며
블레셋. 모압, 암몬, 아람, 아말렉을 쳐 무찌른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예:사도바울이 구부로 섬에서 전도할때 총독 곁에 있는
박수 엘루마를 꾸짖어 소경이 되게한 사건같은것은
먼저 그안에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들과 세력을
물리치고 나서 영혼구원을 위하여 사랑과 기도를 하여
주어야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 대해 반대하고 해를 끼치는 원수가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은 대적하지 않지만 시기, 질투, 경쟁, 욕심, 원한, 등으로
미움을 가진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우리의 원수가 될수있으며
이들에게는 사랑으로 용서해 주라 하시는 것입니다.

예컨대 다윗의 경우 사울왕은 누가 보든지 그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을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자라 하여 두번이나
목숨을 해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갈때, 시므이가 그에게 돌을 던지며
그를 모욕하고 저주했지만 이때도 '하나님께서 저 입을 통하여
내게 말씀하시는지 알곘느냐?'하고 그를 해하지 않고 용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축복하고
 모욕하는자를 위하여는 기도하라'(눅6:27-28)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미워하신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미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아들로서 이 점을 본받아 사람자체를 미워하지 말고
그 사람의 죄된 행위를 미워하고 사람은 용서해주는 마음이 있을때
비로서 아들로 인정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때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받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롭 8:14)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였고
예수님은 그 계획하신것을 완성시키셨고
성령님은 그 완성하신 구원의 경로를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며 직접 이땅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우리들을 인도하시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대우해 드리는 데는
각자가 다름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셨을지라도
주인으로, 또 세례주로 모시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자녀의 상태에서만 머므르고 사는 신앙이라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주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나의 삶의 주인이시며 나의 사명의 주관자로
예수님을 모시면 성령님께서 나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이런 삶을 살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으며
천국을 향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다시말해 우리들은 날아서 한국은 갈수가 없으나
비행기를 타면 갈수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비행기를 타고도 갈수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는 '성령호'를 탈때에만 도달할수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일단 비행기를 타면 중간에 내릴수가 없이
 그안에 모든것을 맡기고 가만히 있어야 목적지까지 가듯이
마찬가지로 성령호를 탔으면 믿고 맡기고
순종하여 가만히 있어야만 역시 도달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도중에 아무리 우리가 내리려도 내릴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와같이 믿고 따르며 사는 삶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삶인 것입니다.


4. 이기는 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수 있습니다.

'이기는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21:7)

그리스도인은 네가지 영역에서 이기도록 성경은 말씀합니다.

1)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2) 죄에 대하여 이겨야 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3) 사딘의 세력을 이겨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히리라.'{약 4:7)
4) 사망의 권세를 이겨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 사셨으며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줄 앎이로다'(롭 6:9)

세상과 죄와 사단과 사망에서 이길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길수 있는 방법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1) 이 모든것을 이기신 예수님을
내안에 모시고 살때에 이길수 있게 됩니다.

(2)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이길수가 있습니다.(행1:8)


(3) 믿음으로 이길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요1서 5:4)

이와같이 예수님, 성령님, 믿음은 승리의 3요소 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들은
아들로서의 신분과 사명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후사의 자리까지 가야하며, 세상과 육에 속한 부분에서 벗어나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승리하는 삶을 살때에
진정 아들로서의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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