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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벧전 2:1-9]




/ By Priscilla




평안히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

모든 악덕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로 구원을 이루게하고 자라게 하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주의 말씀이 세세토록 있으므로

'모든 악덕과 궤휼과 비방이나 외식이나 

시기의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와 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말씀에 주목하자.



이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않는 행위이다. 

나는 과연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행위의 열매가 따르는 것일까?

사실상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요즘의 나는 

주님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이요. 



신령한 젖을 사모하기보다는 나의 의지와 

노력의 방편으로 영적인 생활을 

게을리 해왔음읋 시안 할 수 밖에 없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하려 하심이라고했다. 



주의 인자하심을 정녕 맛본 자로서 

이제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게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한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나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한 자는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임을 알자. 



따라서 나를 어두운 곳, 사망의 음부가 나를 둘렀던 

황량한 들판과 수렁에서 건지시고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인 것을 깊이 묵상 해 보자. 



1) 택하신 족속으로서 과연 나는 모범을 보이고 있는가?

자문하고 행위를 바르게하며 외식이나 

비방의 말이나 시기의 말을 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어린이와 같이 

사모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2) 하나님께 더욱 감사드리자. 



기도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임을 깊이 깨달았사오니  

더욱 의미있고 신중하게 사는 삶이 되게 하소서!





---2011/05/30




/ By Priscilla








  1. 신령한 젖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2014.02.10 14:55
  2. 신령한 젖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2014.02.13 14:10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

[벧전 4:1-6] 




/ By Priscilla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이미 받으셨음으로 이전에 행했던 죄악을 쫓지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잘 다스리며 지내야겠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지난 날은 지나간 그대로 족하니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잊고 비록 부족할지라도 

영으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죄를 그치고 바르게 살아야한다. 



육체의 고난을 받을 자, 곧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그치도록 댓가를 치뤘으니 

그 구속의 은총으로 우리는 값 없이 죄를 그치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행할 것은 정욕을 좇지않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하려 함이다." 라고 말씀히신다. 



그러므로 지나간 시절에 행하였던 온갖 행위는 

그것으로 그치고 더 이상 구습을 좇지말고 단절해야한다. 

그리고 마음을 세롭게 함으로 빛의 자녀처럼 살아나가야한다. 



때로는 지난날의 행위로 인해 여전히 표면적으로는 

지탄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나 인식을 받을 수가 있지만 



그럼에도 더 이상 죄를 행하지 않겠다는 각오아래 

지난 날의 허물로 인해 결과로 지탄을 받는 것에 

더 이상 연연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 대면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것을 감수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능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극복해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고난을 통헤 

우리의 영혼으로 하나님과의 멀어진 관계를 

단번에 회복시켜주셨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 문을 활짝 열어주신 예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한다. 



언젠가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게될 그때, 

즉 심판을 맞이하게되면...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이 판명되고 가려질

죄의 댓가가 분명히 있음을 

각인하며 사는 삶이 요청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할까?



1.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죄와 싸우며 살아야한다. 

2. 핍박에 대해 두려워말아야한다.

3. 죄의 요소를 제거하기위해 고난이 뒤 따라야함에 

예수님께 순복하고 기뻐하며 살아야한다. 




기도




주여! 제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행할 죄과를 모두 도말 시켜주시고 



이에서 벗어나도록 

늘 지켜주시고 안위하여주소서!

 

   



---2011/05/16




/ By Priscilla














선한 양심

[벧전 3:8-22]





/ By Priscilla





선을 행하다가 어이없이 예기치 못한 고난을 당할 때,

'옳은 일을 행하기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이 때 우리는 신앙의 힘으로 선한 양심에 따라 

상황을 피하지말고 이겨내야한다. 



사람들이 때로 협박을 하더라도 겁내지 말 것이며, 

선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바로 찾아가는 심령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임을 믿고 

거룩히 온 마음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놀라운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나의 모든 죄악을 

도말시켜 주시기 위하여 2천년 전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 매달려 죽음을 당하셨다. 



주님께서 원대한 일을 치루어 놓으셨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악을 악으로 여기며 욕을 욕으로 값는다면 

이런 행위를 과연 주님께서 기뻐하실까?  



나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기에 생명을 사랑하며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1. 악한 말이나 거잣말을 해서는 안된다. 

둘째, 악에서 떠나 선한 말과 평화를 추구해야한다. 



왜냐하면 주는 의로운 사람에게 눈을 돌리시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나 

악을 행하는 자들은 대적하시기 때문이다. 



열심으로 선한일을 한다면 나를 해칠 자가 없다. 

그렇지만 옳은 악을 위해 고난을 받는 다면 

이것은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협박을 하며 무어라 하던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이상 선한 양심을 따라 겸손히 행할 때, 

그리스도안에서 행한 선한 일을 공박하고 

욕하던 이가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선한 일을 도모하며 악에서 떠난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나를 위해 죽임을 당하셨지만 

살아나셔서 모든 군세를 지니신 분이시며 

하나님 보좌의 오른 편에 계신 능력의 주님이심을 찬미드리자. 



1) 내게 맡겨 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일환으로 주어진 일에 늘 충성하자.



2) 언어 순화 운동을 스스로 벌여 말을 늘 조심하여 

남을 살리는 말을 선택하고 사용하자.  



3)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데 치중하여 시대를 

잘 분변하며 하나님의 법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자. 



기도



주님 저의 삶을 주관해 주시고 주님을 

다시 뵈옵는 그날까지 선한 양심으로 살게하소서.





2011/05/09




/ By Priscilla









믿음의 시련 / 영혼의 구원

[벧전 1:1-12]





/ By Priscilla





베드로는 아시아에 흩어져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곧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야 한다." 라고 강조하고있다. 




그러므로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베드로는 성도가 당하는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 




따라서 베드로는 디아스포라된 흩어진 성도들을 향해서 

그들을 위로하며 "하나님께서 위로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고, 

기업을 잇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 하신 것이다." 라고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전달 해 준다.




이는 나 자신이 의로와서가 아니요, 바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신 것을 생각하고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도 

기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영혼의 구원'을 얻은 사실을 생각해 볼 때, 

믿음이 시련을 능히 견뎌나가며 시련보다 더 킅 

기쁨의 구원, 즉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고 

말 할 수 없는 영광으로 기뻐해야한다. 




바로 이 말씀이 위로가 되지 않는가? 

이 점이 내가 시련 속에서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오늘도 용기있게 살아나갈 수 있는 기뻐해야 할 이유이다. 




믿음의 시련은 장차 맛볼 그 영광에 족히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바가 계시로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람으로 오는 것일진대 

기쁨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경륜을 찬미드리자. 




그러면 우리가 어찌 해야할꼬?




1) 절대 절망 속에서 더이상 슬퍼하거나 낙심하지말고 오직 주님을 믿고 

헤쳐나가며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드리자. 

2) 어떤 시련이라도 이 시련이 영구한 것이 아니요, 일시적임을 알자. 




기도 



주여! 시련을 통해 저를 겸손케 하시고 

죄와 연약함과 불신을 제거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시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가게 하여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나이다. 아멘





2011/05/02




/ By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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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벧전 3:7)



부부란 한 없이 행복을 줄 수 있는 사이이자, 한 없이 상처를 줄 수 있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만드느냐, 아픔을 만드느냐는 서로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부의 행복은 저절로 만들어지기보다는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통하여 닫고 일어설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열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부부의 다툼은 당연히
일어나게 되고 어떤 경우는 일평생 가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그 전에 헤어짐으로
서로의 관계를 종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즈음은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생을 살면서 도달해야할 목적지까지 이르기 위하여는 함께
도와가며 사는 길이 훨씬 쉽고 값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그러면 결혼으로 인하여 얻어지는 값진 것이 무엇일까요?

1) 사랑하는 배우자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 2:18)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여기서 '독처''혼자 있다'는 뜻이고 '돕는 배필'이란 '짝'이란 뜻임니다.

아담에게는 하늘에는 천사와 하나님이 계시고 땅에는 동물들과 아름다운 환경이 있었으며
아무 것도 천상천하세게에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음 속은 허전하고 고독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담의 지음 받음이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여자를 데리고 오시자
아담은 그 여자가 자신의 뼈로 생겨난 짝인지도 모르면서 말하기를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또 다른 자기이기 때문에 알아보고 나온 고백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또 다른 자신의 남은 반쪽을 찾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자신이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본능이 있습니다. 즉, 식욕, 성욕, 수면욕 입니다.

그리고 그 본능 속에는 기쁨으로 목적을 이루게 하는 선물을 넣어두셨습니다.
예를 들면 생영을 위하여 음식을 먹지만 음식을 먹을 때, 맛을 느끼며 먹도록 하신 것과,
자녀를 위하여 부부가 애정을 주고 받지만 애정 속에는 신비한 쾌감을 누리게 하셨고
피로회복을 위하여 잠을 자지만 꿈이란 현상을 통하여 영의 세계를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아담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은 재물, 권세, 능력도 이닌 자기의 짝인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모든 것은 남편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복의 근원을 자신의 짝과 함께 있을 때
모든 것이 의미가 있도록 여겨지게 하신 것입니다.   

2) 나를 닮은 자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말 2:15)

인간은 천사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지으실 때, 낳음으로 짓지 아니하시고
단번에 모두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는 조상도 후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자손으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을 하나님을 닮은 형상과

(구체적 닮은 꼴 - 지, 정,의, 존귀) 모양으로
(추상적 닮은 꼴 - 거룩, 의, 영광)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다양성과 개성이 있기 때문에,
꽃들의 여러모양과 각기 다른 향기를 지니고 있도록 창조하신 것과 같이
거룩한 자녀들에게도 각자가 다 다른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지니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도 자녀를 여럿 낳아보면 나를 닮은 여러모습과
성품, 재능 등을 지니고 있음을 봅니다.
열 자녀 낳아도 다 귀엽고 사랑스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내가 남자에게 열린 아름다운 꽃이라면 자녀는 꽃의 결과인 열매와 같습니다.
나무의 가치가 꽃과 열매에 있듯이 인간의 가치도
가정과 가족이 번성함으로 높은 가치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 127:3)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부부를 통한 자녀를 기업으로 잇게 하심으로 이루십니다.
우리 자손이 많이 번성하여 '천국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사명이 걸혼에
있음'을 생각한다면 결혼과 자녀생산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합당한 삶이자 행복인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여기라." (벧전 3:7)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하는 이유''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은혜란 영원한 삶을 함께 받는 것'이고 '유업이란
그 삶에 주어지는 하늘 나라의 기업이 포함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에 가면 각자가 받을 상급이 다 다릅니다. 누릴 기업도 다 다릅니다.
그 구분은 예수님을 얼마큼 닮도록 성장하여 왔느냐에 따를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서로 중요한 것은 서로의 완성을 함께 이루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인생을 살았을 때와 아내와 자녀를 기르며 함께 산 인생과는
사랑, 용서, 희생, 감사 면에서 핏줄에 섞여 있는 체험이 서로 다릅니다.

인간이 특별사역을 위하여 성령의 택하심을 따로 입은 사역자들은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독신으로도 예수님을 기장 많이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경과 상황 속에서
서로 믿음으로 보완하며 체험하는 가운데 성장되어집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부부가 서로 더 성장된 완성의 모습을 이루어
상급도, 기업도 더 큰 상을 받을 수 있게됩니다.
기업을 받고나서의 천국에서의 일은 주님과 함께 하게됩니다.
그러나 받기까지의 성취는 함께이루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2. 값진 것을 잘 보전하여 완성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인간으로서 완전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말씀따라 개선함으로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부부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여 피할 것, 덮어줄 것, 및 협력할 것을
때에 따라 지혜롭게 처신하는 행동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부부가 서로 다루고 헤어지는 불화의 요인을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제일 큰 원인은 의견차이요,  둘째는 금전문제라고 합니다.


1) 의견 차이는 상대방이 나의 다른 반쪽임을 나타내는 주장에서 생깁니다.



결혼은 사람하고 하는 것이지 육체하고 하는 것도, 어떤 소유하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즉, '지, 정, 의'를 갗춘 한 인격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많은 영예, 소유를 서로 지니고 있어도 의견이 다르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즉, 마음이 맞아야 부수적인 것들이 의미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마음을 이해하는 자세로 사는 것''부부간에 가장 중요한 행복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마 22:39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상대방을 나 같이 사랑하는 방법은 오직 '그가 나를 이해해주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같이 나도 그에게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나의 노력'
임을 의미합니다.

대부분 부부와의 의견 차이는 -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강하게 주장하게 됨으로 나의 고집과 교만을 깨뜨리는
역활을 서로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허락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것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성경에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26)
깨어지긴 쉬우나 후유증은 오래 갑니다. 분을 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회복과 좋은 결과는 두고두고 잘했다 위로로 남습니다.
'자아는 (지, 정, 의)' '거듭남' 으로만 깨어집니다.
즉, 신앙으로만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말씀은 모든 것을 완성시켜주는 지침서이기 때문입니다.


2) 물질 문제는 서로의 유익을 더 만들기 위한 마음에서 생깁니다.



부부 사이에서는 대개 공동으로 자금 관리를 합니다. 그래서 물질을 사용하는데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비일비재한 일로 수퍼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아내는 자기 취향과 맛에 맞는 상품을 고르고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럴 때 한편이 참견한니다.

"그런 걸 왜 사요?" 하고 도로 내려 놓습니다.
가구, 집, 자동차 모든 걸 구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부부 각자가 벌어온 돈을 사용할 때도, 내가 번 돈은 내 맘대로 쓰고 싶어합니다.
그 이유는 생활과 환경에 지배받고 어렵게 벌어들인 돈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은 모자라도, 너무 많아도 부부에게는 여전히 문제의 소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틀린 것을 고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취향이
서로 다른 것을 살 뿐입니다.  또한 잘못쓰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쓸 뿐입니다.
물질은 내가 번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나를 통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물질도 허용이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생명에 관한 것임을 생각할 때
서로 원하는 것을 허용해주는 넓은 마음... 같은 것이 중요합니다.
보금자리는 함께 지낼 때 의미가 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소유가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양보가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 20:35졀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부는 헤어지기 위하여 만난것이 아니라, 더 완전해지기 위해서 만난 것임을 생각할 때
각자가 수용하고 노력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 반드시 시간이 지나면 참 잘한 일이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그 날이 곧 와서 서로에게 감사하며 사는 기쁨이 있을 줄 믿습니다.
 






New Zealand / West Side                            Moru



견디기 힘든 일을 참아갈 때!

[벧전 2 :20-21]




/ By Priscilla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벧전 2:20-21)



사랑 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사랑은 오래 참고 

허다한 죄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실재이다.



이방인도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는데 

인색하지 않고오히려 이웃과 사귐에 

관용함을 때로 목도하면서 



크리스챤의 삶을 다시금 

재조명하며 생각 해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삶의 모범이 되어 주셨다!



이 땅에 살면서 희노애락을 

겪으시면서도 그분은 



오늘의 나를 위하여 몸소 

고난을 받으시고 본을 보여 

사랑의 실체를 확인 시켜 주셨다.



또한 그분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시켜 주셨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이신

 아들을 통해 순종의 모습을 

친히 보여주셨다!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지닐 수 있는 

진리와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애오라지 그분의 뒤를 좇아 믿음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도록 배려 해 주신 것을 

생각 할 때ㅡ 



참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 앞에서, 오늘도 본이 되지 

못하는 나의 삶의 행로가 

그져 부끄러울 뿐이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칭찬을 받을만한 근거가 없다!



 오늘날 주님 안에서 그분이 원하시는대로 

선한 행위로서 인내하고 다만 현재 당하는 

고난을 참고 이겨내면, 그 언젠가는 정금같이 

빛날 그 때가 올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다시금 나는 이 시간에...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장차 올 하나님의 영광에 

족히 비교 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바라보시는 창조의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당신의 형상대로 

티끌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숨을 불어 넣어 생기를 

불어 넣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에스겔의 마른 뼈의 이상(vision)과 같이 

아무런 힘도 없이 볼품 없는 마른 뼈에

당신의 생기를 불어 넣어 능히 군대를 

세우시는 능력의 하나님!



그 어느 것이나 

하나님의 손에 들려있으면

 소성케 됨을 알찌언저!



이에 우리는 놀라떨며 온전히 순복하여 

더욱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것이다.



광대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니 



나는 다만 선한 청지기로서의 

나의 직분을 준행하면서 

그리스도를 본 받아 나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아름다운 도구!

칭찬 받는 하나님과 그 마음이 합한 

선한 도구 되기 위하여ㅡ 더욱 

화목한 삶으로 기쁘게 화답 할찌니...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아 

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려 하려 하노라!(롬 15:5-6)"



ㅡ할렐루야!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인내에 대한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시고 

또 모진 환경 중에도 견딜 수 있는 



소망을 주심을 더욱 

감사드리나이다.ㅡ아멘!



ㅡ묵묵히 오늘도 순종하며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길 원하는ㅡ



브리스길라! 드림!




1993/12/18(토) 


/ By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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