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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에바다교회


New Zealand / West Side                            Moru



새 출발

 [사 43:18-28]




/ By Priscilla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말며 

옛적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시는 하나님!


 "내가 새 일을 행 할 것이니 

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말씀 하시는 하나님!

 


이는 "내 백성 나의 택한 백성을 위해 지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그 문제의  자녀가 주님께로 돌아와 

죄를 자복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마치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주홍빛 같은 죄를 깨끗하고 말갛게 

씻어 도말 하겠다." 고 하셨다.



그러니 이제로 부터라도 지난 날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모든 생을 내어 맡기며 안식하라고 하신다. 


 또한 모든 지난날의 과오를 통회 자복하고 아뢰면 

더 이상 이를 기억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이신가?



우리의 죄 값을 말끔히 청산 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우리 대신 죄 값을 지불해 줄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르느냐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과연 나의 삶에서 
 어떻게 새 길을 준비하시려는 것일까?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는데 

막상 나 자신은 영의 눈과 영적인 귀가 어둡고 

들리지 않아 도무지 한 치 앞을 구별 할 수가없다. 



그러나 이제 곧 새 길을 주시마고 하신 하나님이시니 

약속을 반드시 지켜 주실 것을 믿는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그렇다면 나는 어찌 살아야할까?



1) 피조물이 자신을 인식하고 더욱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자.

 2) 찬양을 부르기에 합당한 삶을 살자. 
 3) 새일을 행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자.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로서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는 

피조물이란 인식을 늘 잊지말자.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의지하고 

마음을 굳건히하여 담대함으로 새 출발을 하자!



기도



저를 위해 준비하시는 모든 삶의 일체를 맡기나이다. 
 새 출발을 원하시면 의심치 않고 따르겠나이다. 
 부디 늘 함께 계시며 그 길을 인도하소서!




2012/03/19



/ By Priscilla








0


DOUBLING OVER
[이사야 40 : 2]

 


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이사야 40장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포로 해방에 대한 예언입니다.

복역의 때란 이스라엘 백성, 남유다의 범죄에 대한 징계로 인해

바벨론에서 약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말합니다.

 

문구대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정확하게 두 배로 심판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의 대가로 값을 치렀으니

더 이상의 형벌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61:7)

 

그들의 포로 생활은 끝났고 죄악은 사함 받았으므로

선지자들을 통해 실의에 빠진 백성들에게 구원과 소망을 갖게 하며

죄의 백성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로 갚는다는 것은 율법에 따라 모든 범죄에 적용되었으며 ( 33:9)

이 때 당시, 이방 국가들에서도 통용되었던 판결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 값의 배가 되는 대가를 받았다 하는데

바벨론 포로생활 약 70년이란 기간이 그 대가였다면

과연, 그 단위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집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스라엘 문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이스라엘 마을에서 살고 있는 아담씨.
여러가지 형편이 어려워
주위 안면이 있는 분들에게 어느 정도 물질적 빚을 집니다.

하루는 A씨에게 양 3마리,
어느 날은 B씨에게 $$$,
 
그 다음엔 C, D…


날은 흘러 빚을 갚을 약속이 넘었어도 형편이 어려워 고민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빌려 준 사람들 입장에서는 본인에게 찾아와 '돈 갚아!!' 다짜고짜 잡아갈 수도 있습니다만

이스라엘 민족은 규율이나 법을 어긴다든지, 아니면 가장 큰 죄 -
신성모독일 때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의 친밀도라든지 관계하에 있어서 서로 난폭한 행동 보단

그레이스 타임을 주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 문 앞에 하얀 종이가 붙습니다.


그리고 언제 양 3마리 빌려줬음 - A씨 –‘ 라고 써집니다.


그 담날 종이를 발견한 B씨는 ?! 나도 빌려 준 거 있는데…’

A씨 글 옆에 돈 얼마 by B씨’라고 적습니다.

그 후 C, D… 등 사람들이 자신들이 빌려준 목록을 차례차례 적어갑니다.

 

마치 수학여행 마지막 때 반 친구들의 롤링페이퍼 처럼
... 이렇게 차곡차곡 빈칸이 채워져 갑니다.

 

 

 
친구사이의 귀여운 표현으로 여겨지는 이 일은 사실

이 사람은 신용도가 떨어짐을 의미할 수도 있고,

덕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그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게 되면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부끄러워 밖에 나가기를 거부하게 됩니다.


결국 그 마을을 떠날 수도 있을 만큼 신용에 철저한 그들에겐

직접 와서 두들겨 패지 않아도 충분히 그 만한 가치가 있는 하얀 종이.

(이스라엘 당시 상황이라면 양피지 일 수도 있고)


 

\\\\\\\\\\\\



그러던 어느 날, 길을 지나가던 아담의 삼촌, 엉클 싸이먼은

오랜만에 볼일을 마치고 조카를 보러 오는 길에 이 종이를 보게 됩니다.


? 아니, 이거 무슨 일이지?’


대충 글을 봐도 상황을 알게 된 엉클 싸이먼.

'좋아. 내가 대신 갚아주지'

조카를 위해 대신 해결하기로 결심합니다.
아담을 직접 만나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그런 행동보다 그는 갑자기 종이를 뒤집고 깨끗한 면에 무엇인가 적습니다.


'xxxx 언제까지 모두 갚는다 엉클 싸이먼 –‘
 

 

이 뜻은 곧, 이 사람의 문제는 엉클 싸이먼이 해결함으로

이 사람을 더 이상 추궁하지 말고 내게 오라는 것이죠.

 


이 행동을 Doubling Over 라 표현하는데

오늘의 말씀 문자대로 두 배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종이 앞면의 모든 죄를 뒤집고 대신 탕감해 주는 것이니

더 이상 이 사람의 죄를 묻지 않을 것이며
없는 것과 같이 내가 사하여 준다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잘못으로 인해
노예로 생활하게 되었더라도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
란 뜻으로도 해석 할 수 있겠습니다.


문구대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정확하게 두 배로 심판하신다는
엄격하고 어려운 하나님의 뜻으로 보기 보다
좀 더 자비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표현해주는
또 하나의 표현임을 알게하는 이야기 입니다.

 

 






재창조
[사 65:17] 


하나님은 존재의 근원이시고 모든 의미의 마감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존재의 발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안에는 존재의 의미가 담겨져있어 그 의미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반영될 때까지 진행하는 것이 \
 
창조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창조의 주된 의미는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인간의 존재를 
 
얻기 위함임으로 인간을 중심으로한 만물들이 
 
보조로 지어진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영원을 기반으로 창조되어진 만물들은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내며 
 
사랑의 아름다운 조화가운데 인간과 더불어 공존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의미이며 인간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더욱 표현하여 줌으로 하나님의 
 
신적인 속성을 개발 할 수 있도록 보조역할을 하는
부가적 목적의미를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음 받은 인간은 부여되어진 영생의 기간 
 
속에 무한히 진정한 존재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의도하신 수준까지 자라나야만 하는 
 
의무와 축복이 함께 주어져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창조가 영원히 존속할 수 없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6일동안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가 모두 만족하게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마지막날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음으로 창조의 총 하이라이트는
 인간 창조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인간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반대로
 
 
불순종과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깨뜨리고 말았으며 
 
이로 인한 저주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모두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저주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롬 8:22]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지 않음으로 
 
죄로 오염된 이 세상은 모두 사라지고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의
 
구원을 통하여 거룩한 영적 자녀가 된 인간들과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새 창조가 요구 되어집니다.  


2. 재 창조로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곳일까요?


헬라어에서 새로운 것을 의미한 단어에는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네오스"와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카이노스'가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재 창조에 쓰여진 
'
새로운 '이란 말은 '카이노스'라는 단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재 창조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변형이나 갱신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 질서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카이노스'로 표현된 새 하늘과 새  땅은 죄악과 사망과 
 
고통이 지배하던 현재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구원받은 
 
거룩한 성도들만이 살 수 있는 깨끗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호크마 요한 계시록 21장 강해)

또한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성격은 이사야 65:1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1)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입니다.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사 65:18]


인간은 죽음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슬플 수 밖에 없고 
 
질병과 배고픔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두는 죄로 인한 저주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이런 것에 대하여는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사 65:17]하십니다. 

그 이유는 내가 완전한 환경에 알맞도록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으니 죽음이 없고 저주가 없으니 배고픔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살면서 누구나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삽니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인간이 그리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곳입니다.
 
더욱 나아가서는 성령의 열매로 신령한 성품이 된 성도들과 
 
기쁜 교제를 하는 곳임으로 낙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2) 마음껏 하고싶은 활동을 하며 지낼 수 있는 곳입니다. [사 65:21-22]


인간의 기쁨은 배불리 먹고 건강한데 있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더욱 기쁜 보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천국에 가면 하루종일 먹고 즐기고 노는 곳이라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천국에서도 우리의 할 일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일을 우리도 맡아 분담하여야하고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거처나 주변도 내가 관리하여야만 합니다. 

즉 내가 가장 좋아하는곳 으로 거처를 정하고 숙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환경에 천국 양식을 가꿀 수도 있습니다. 
 
백배로 수확되는 천국의 맛있는 열매를 재배해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서로 나누어가며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지낼 수도 있습니다. 
 
이웃과 어울려 더 좋은 공동 놀이터를 개간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의 재료들로 지어지는 건물과 도시는 망치와 못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능력에 의해서 
 
말과 능력의 손재주만으로 지어질 것입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우리도 하루 일이 끝날 때마다 
 
 "보기에 좋았더라."하면서 지낼 것입니다.  


3)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v.25)


이 땅에서는 인간과 인간과의 교제만 가능합니다.
 
 
다른 생명체와는 충분한 교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더우기 물질의 교제의 한계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데 있습니다. 
 
그러나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모두가 신령한 존재가 됩니다. 
 
같은 세계에서 같은 이해와 같은 사귐이 있는 
 
고차원의 존재들로 변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과도 보고, 듣고, 모시고, 대화하고, 기뻐하고
또한 각종 천국의 영물들과도
 대화와 그들의
재미있는 속성을 사귀며 나눌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는 그들 속에 하나님의 천만가지 아름다운 
 
속성 중 한 가지 씩을 다 넣어주셨기 때문에 서로 좋은 속성들이 나타나면 
 
신기하기도, 기쁘기도 하면서 서로 공유 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동물들을 먹이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동물들은 인간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같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피조물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평은 사랑할 때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사랑의 범주와 높이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범주까지 
 
이르러 만물을 품에 안을 수 있는 화평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3. 재창조 되어지는 새 하늘과 새땅은 천국과는 다른 곳입니다. 


현재 현존하는 천국은 영혼의 중간기 쉼의 처소로서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시기 전까지 머무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이 시작되면 이 땅도 하늘도 모든 세계도 
 
다 없어지고 오직 우주 공간에 심판대만 놓이게 됩니다. (계20:11)

하나님의 모든 심판이 죽은 자 산자를 막론하고 다 이루어지면 
 
그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어 생기게됩니다. 
 
그동안 죽은 자들은 천국 또는 지옥에 머물러 있었으나 백보죄 심판을 거쳐 
 
죄인은 영벌의 장소로 성도는 새 천지로 옮겨갈 것입니다. 
 
이때 성도들에게 오는 변화가 완전 신령한 영, 횬, 육으로의 부활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현재 죽어 구원받아 천국에가도 신령한 존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다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육신의 부활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과,
 
영혼이 죄성으로 인하여, 완전 영화 단계를 이 땅에서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천국엘 가기 때문에 성령님이 완전히 임하실 완전 충만은 
 
다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백보좌 심판시 모든 영혼이 다시 부활의 모습으로 설 때에는 
 
첫째, 부활을 이루며 살았던 천년 왕국의 존재시보다 
 
더욱 완전한 신령한 모습의 존재가 되어 살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천국의 개념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구원받은 영혼들이 모이는 낙원이며 재림시 사탄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두고, 주님을 죽도록 충성한 성도들이 
 
다시 주님과 더불어 이 땅에 천년동안 통치하러 
 
내려올 때까지의 머무는 처소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이 끝나면 마귀와의 싸움도, 대치도 없어지기 때문에 
 
영원히 마귀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은 세계, 그 세계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며 
 
죄가 영원히 없어지는 세계가 바로 재창조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4. 재창조의 주역은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사역입니다. 


태초의 천지창조는 하나님께서 주역이 되어 이루어진 사역이며
 
 
성자와(요1:3)성령은(창 1:2) 이 일에 동참하시어 이루어진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재창조는 구원 사역의 연장이자 완성임으로 구속 사역의 주인공이자 
 
집행자이신 예수님께서 주관하시는 사역이 될 것이며 성부 하나님은 
 
심판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시며 성령님께서는 
 
온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사역으로 동참하실 것입니다. 

특히 재 창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탄과의 
 
영적 전투와 처벌 문제가 선행되어야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하심과 사탄을 영원히 지옥에 가두는 사역을 
 
직접 지휘하시는 분인 예수님의 최종사역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성도들의 각 행위에 따라 상금을 주실 것이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통하여 신부된 성도들과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삶을 
 
함께 영위해 나가시는 신랑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환경도, 사역도, 
 
유업도 함께 관여하실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실천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완성 하시는 일로
함께 동참하실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지상 사역으로
 
구원을 보여 주셨지만 그것은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사명의 일부에 속한
작은 일에 
불과할 뿐이며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회복하신 예수님은 
 
천상 사역의 거대한 프로르렘을 진행하시고 계신 영의 세계의 주인공이십니다.   

성도는 구세주 예수님만을 국한하여 주님을 섬기기보다 우리 사후 세계의 
 
총 주인공으로서의 재창조 주역으로서  주님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5. 재 창조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사는 성도들의 자세
 

1)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며 살아야합니다. (벧후 3;11)


우리는 약혼한 처녀와 일반 처녀와는 사고와 행실이 다른 것을 보게됩니다. 
 
그 이유는 약혼한 예비 신부는 신랑을 생각하고 시댁을 생각하고 
 
시댁의 분위기와 수준에 맞추어 살아야 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쁨은 그녀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의 예비된 신부들입니다.
 
주님의 수준으로, 천국의 분위기로, 새생활을 할 수준에
맞게 지금부터 준비해야만합니다.
 
 
결혼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듯,
천국도 죽으면 그냥 가서 사는곳이 아닙니다.
 

가야할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의 삶입니다.
 
 
세상을 사랑할 때, 신부의 신분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그리며 살아야합니다. 

  

2) 예수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합니다.(벧후3:18)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는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는 서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전자는 체험을 주로 여기면서 느껴지는 감정이고, 
 
후지는 주님에 대한 모든 말씀을 읽고 지식적으로 깨달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날 때 성숙하게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버릴 수 있는 희생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극치는 자신의 포기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자신을 포기하신 분이십니다. 
 
그같은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십자가를 바라보아야합니다. 
 
6시간을 고통중에 달리시어 돌아가시는 모습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합니다. 

또한 지식은 인간을 성장시킵니다. 인간은 양식으로 
 
성장되는 아니라 지식으로  성장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인격이 모자라는 육신은
 
아무리 커도 어린아이로 취급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의 겉사람은  커도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속사람은 
 
여전히 어린아이라 영적인 구실을 제대로 하지못하고 있음을 봅니다. 

 사람은 관심 있는 것에 대하여 파악을 제일 많이 하게됩니다.
 
현재 우리의 관심은 세상입니다. 따라서 죄악이 성장 할 뿐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관심은 주님이어야 합니다. 
 
그때 성령의 열매와 은사로 신령하게 자라나게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구세주로, 주인으로, 
 
세례주로, 신랑으로, 심판주로, 사역의 주관자로, 재림주로, 인도자로, 
 
처소 예비자로, 영적 전투의 대장으로, 영생을 주시는 분이요, 
 
상주시는 분으로, 스승이요, 재장조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부적으로 깨닫고 주님과 함께 동참하며 살 때, 
 
재창조에 대한 성도들의 바른 신앙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다같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으로 바른 신앙관을 정립하고 
 
사는성도들이 다같이 되십시다.  











 


만민의 기호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 11:1-10]




/ By Priscilla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성령으로 풍성한 열매맺기를  원하십니다. 

만민의 기호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이되어 결실하시고 야훼의 신으로 충만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으로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정읭하 공평으로 심판하시고 이 세상을 판단하실 것입니다. 



야훼를 경외함이 지혜의 본분이라고 한바 

주님이 뜻이 이루워지기 위하여 첫 열매요,만민의 기호로 오신 

옛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위한 섭리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공의와 정직으로 그분의 선포로 이 세상이 불의한 것을 판단하시고 

참된 평안을 주시는 분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맞이하고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다음과 같은 점검을 스스로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만민의 기호로 서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나의 역사관이 확실히 정립되어있는가?" 



"첫 열매이시며 만민의 기호로 서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을 이미 알고 받아들이고 영접했다면 

나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모셔야될까?"



"그날에 주님이 거하시매 서실 곳에 열방이 돌아보며 

주님이 거한 곳이 영화로울 것을 나는 확신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어덯게 미래를 준비해야할까요?



1) 총명과 모략과 재능으로 야훼를 경외하는 신이 

이 땅에 다시 강림하신 것을 믿고 신뢰하십시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잘 섬겨야합니다. 


3) 그분이 왜 이 땅에 와야했는지를 다시금 깨닫고

나의 죄과가 도말되기 위하여 오신 것임을 확실히 아십시다. 



기도



주님과의 교제가 풍성해지길 원하오니  도와주소서 

이제 곧 만민의 기호로 서실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2011/06/27




/ By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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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2
/ 새해 첫날 행하신 것을 바라보라!
(사 43:18-19)




신년의 첫날이 중요한 이유는
그 해의 전체를 대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역사적인 일들은
초하루에 행하셨던 것을 볼 수 있으십니다.

또한, 행하셨던 그 일에는
여전히 그 상징적인 의미가 주어져 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으로 받아들일 때
베푸셨던 역사하심 또한 나에게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월 첫날 행하셨던 일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새 시대에 새 환경을 열어 주셨습니다.

[창 8:13]
"육백일년 정월 곧 그 달 1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 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을 홍수로 멸하신 후에
새로운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방주 안에서 거의 일년 동안을 갇혀서 생활하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참으로 새 세상으로
나오는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처음 비가 쏟아지는 40일간은
두려움과 한편 안심함으로 긴장 속에서 지내었습니다.
그러나 300일이 넘는 기간을 폐쇄된 장소에서만 지내게 되었을 때
참담, 암울, 지루함, 기다림, 궁금함, 답답함…… 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의 해방을 보며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환경은 인간이 변화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를 내리심, 물이 차올라 지면을 덮으심, 물을 걷으심,
새 땅이 드러나게 하심,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임)
그렇다면 인간이 해야 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순종뿐입니다.

방주는 비가 오고 홍수 났을 땐 필요한 것이지만,
물이 없을 땐 방주 속이 답답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지내온 환경이
내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년도부터는 환경의 방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첫째, 가정의 방주로부터 나와야 하고,
둘째, 숨막히는 교실의 방주로부터 나와야 하고,
셋째, 닫혀진 사업장 의 방주로부터 나와야 하고,
넷째, 꽉 막힌 사역의 방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새 환경의 문이 열릴 것을 기대하며 신년을 맞이하십시오.


2. 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스 7:9]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스룹바벨의 1차 포로귀환은 “육신적인 해방”이었으나,
에스라의 2차 포로귀환은 “영적인 해방”을 의미합니다.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 습관, 개성, 언어, 자유……등
모든 것이 상실됨을 의미합니다.

현대생활에서 눌림 받는 것 또한
나를 누르고 있는 지배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전, 가정, 사업, 건강, 자녀, 진로, 비자, 사역문제…… 등)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함께 하심으로 풀려지게 하십니다.

1,440 km 의 4개월에 걸친 긴 여행 길에서 강도로부터 보호하시고,
대적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시고, 질병과 사고로부터 지켜주신
하나님께서는 나도 모든 대적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입니다.

[20절]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왕의 내탕고에서 취하여 드릴지니라".

특히,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재정의 문제 또한 해결이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땅에서 기도함으로 하늘의 창고를 여시고
하나님의 일에 넉넉히 부어주실 것을 바라 보십시오.


3. 새로운 성전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출 40: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 1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

1) 성막을 정월 첫날에 세운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의 시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처음은 하나님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초 태생, 첫 열매, 장자…… 등)
처음을 그분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시입니다.

더욱이, 첫 예배를 하나님께 초하루에 드리는 것만큼
기뻐 받으시는 예물은 없을 것입니다.
이는 나의 삶에서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 분으로 모시겠다는
고백이기도 한 것입니다.

2) 오늘날 나에게 명하시는 성소는
마음 속에 성령의 전을 세우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선
백성 한가운데 머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우리 마음에 와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령님께서는 정월 초하룻날 내 안에 머무시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세속적인 일에서 벗어나
성령의 임재 하심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금년 한 해가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사는
능력의 한 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4.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하여 주셨습니다.

[겔 29:17]
"제 이십칠 년 정월 초 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에스겔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정월이라는 새해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새로운 사명의 기쁨으로 시작 될 것입니다.

옛날 선지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씀, 꿈, 환상, 음성으로 계시하여 주실 것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탄생인,
-사명적 탄생이 이루어 질것을 기대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바로
청결한 마음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육신은 정욕이 가라앉을 때 혼의 지배를 받습니다.
혼은 또한 자아인 의지를 포기할 때 영의 지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나의 노력보다
성령님께 의지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미 나에게 오신 성령님께서는
나의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2011년 새해를 맞이함에 있어서 새 환경, 새 신분,
새 사람, 새 사명을 받는 새해가 될 것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송구영신의 뜻있는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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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

(사 58:6-11)




금식이란 글자 그대로 음식을 금함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쬼'이라는 이 단어는 '자신을 스스로
괴롭게 하는 속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7월10일을 속죄일로 정하시고 하루를
단식하기를 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날이 이스라엘 백성이 금 송아지 사건으로 인하여
죽을수 밖에 없엇던 죄를 용서하시고 모세에게 새로운 십계명 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허락받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참회와 경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심을 의미합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속죄일은 더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금식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한 경건의 표현으로, 또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워지도록 자신을 드리는 온전한 헌신의 표현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마 6:17)

이와 같은 태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의 자세로 특별한
관심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응답으로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바른 금식의 내용과 이에 따른 유익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의 바른자세는 무엇일까요?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1) 흉악의 결박이 풀려 나가도록 간구 드리는 금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흉악한 세력들에 의해 사로잡혀 지내는 무력한 희생자들임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하여 간구드리는 금식을 말합니다.

흉박의 결박을 겪고 있는 경우는- 귀신들린 자, 사로잡혀 병든 자, 음란, 마약,
도박, 음주에 중독된 사람들, 이같은 중상들은 보통 의지로는 벗어날수 없는
증상들입니다. 금식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워 지기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 한 예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 하십시요!

'금식과 기도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수 없느니라.'
(마 17:21, 막 9:29)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나, 신령해지기 위해 의지적으로
금식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 하시지만, 고통을 당하는
이웃을 위하여 금식 하는 것은 기뻐받으십니다.

(2) 멍에의 줄이 끊어지도록 간구드리는 금식을 말합니다.

멍에란, 억압 또는 강제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세력 밑에서 위협받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멍에에 묶여있는 상태란 공산권에 있는 강제 노동 죄수,
포로상태, 독재주의 학살상태, 등 혹사와 위기속에 놓여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같은 큰 악한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경우는 하나님께서 그 세력을
막아 주셔야만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결국 유다인을 몰살하려던 하만 총리는 하나님의 징계로 장대에
매달려 죽게 되고 오히려 모르드개가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북한, 아프리카, 또한 전쟁이 빈번한 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금식기도를 드려야할 의무를 지닌 사람들 입니다.

(3) 압제당하는 자들은 위한 금식을 말합니다.

압제당하고 있는 상태란 폭력과 위협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주로 노예신분, 인종차별, 폭력, 테러범, 반란군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대부분 입니다.
멍에나 압제는 악한 자들이 세력을 잡기 위하여 선량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착취하고
혹사시키는 것을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이들을 사용하시어 자신의 백성들의
죄를 깨닫고 돌아서도록 하살때 가 있습니다.(예: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남)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대,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삼상 7:6)
 
(4) 불우한 이웃을 위한 금식을 말합니다.

냉정한 세상에는 재물이 없어 가난하거나 신분이 낮아 업신여김을
받는 다거나 열악한 환경속에 처해있는 하류층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친척인 경우는 도와주는 것을 꺼려 하거나 교제하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허기지고 지친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들에게는 남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같은 자녀들이기 때문에
형제들이 서로 나누지 않음을 가슴 아프게 여기십니다.
이들은 대개 가난과 수치를 겸하여 살고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을 위한 기도와 선행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행위입니다.
(예: 포로귀환한 백성들이 환난, 능욕,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한
금식기도로 성벽 중건 완성)

'네가 이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가로되'(느1:4)

하나님께서 우리의 금식을 받으시는 이유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고 그분의 뜻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는 마음 자세 때문입니다.  
보통 성실한 신앙생활로도 기뻐하시지만 금식은 단호한 결심의
자세이기 때문에 평상시보다 빠르고 더 큰 응답을 내려주십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에 따르는 약속들(사58:8-11)

(1) 거룩한 삶을 살게됨(8)-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깨끗해진 심령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여 죄성에서 벗어나
거룩한 모습으로 지내게 됩니다.

(2) 치료함을 받게됨-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오랫동안 정신적 육체적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3) 의로운 자의 삶-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욕심과 교만의 행위에서 벗어나 정직과 의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4) 영광이 따르는 삶-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성령님이 동행하심으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됩니다.

(5) 응답받는 삶(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아버지와 자녀로서 막힌 담이 허물어진 삶을 살게 됩니다.

(6) 어두움을 물리치는 삶(10)- '네 빛이 흑암중에서 발하여'
복음의 능력으로 유혹에서 떠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7) 승리의 삶-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영적인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8) 인도함을 받는 삶(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삶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9) 영혼이 만족한 삶-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성령의 충만이 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10) 강건한 삶-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영적 은사와 능력이 주어진 삶을 살게 됩니다.

(11) 번영의 삶- '너는 물된 동산 같겠고'
풍성한 소유와 번성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됩니다.

(12) 기쁨이 넘치는 삶-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말씀의 능력과 영생을 체험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언행은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바른 금식 기도는 제일 많은 축복을 받는 신앙자세입니다.
1년에 3번정도 금식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는, 구약에서 말씀하신
'매년 3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출 23:17)
명하신 것에 부응하는 자세로 봅니다.

대개 금식일수는 1-3일 정도가 대부분이며 특별한 경우는
다니엘 쥬스금식 21간을 한 두번 할 경우 육신의 건강에
많은 도움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영혼의 맑음과 육신의 건강을 위한 금식생활을 통하여 좀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영적 성장을 다같이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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